아주경제 주진 기자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대표와의 청와대 회동은 북한의 5차 핵실험 직후 열리는 만큼 안보 문제에 대해서는 한 목소리를 냈지만,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와 정부의 대북 강경책 등 북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각론에서는 이견차를 좁히지 못했다.
'여소야대' 20대 국회 이후 처음으로 가진 여야 대표와의 회동에서 박 대통령은 소통을 강조하며 여야 협치 의지를 드러냈다. 대통령과 여야 대표 회동에 경제부총리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국가안보실장, 외교안보라인 장관들을 처음으로 참석시킨 것도 이를 방증한다.
두 야당 대표도 박 대통령의 전격적인 청와대 회동 제안에 일정도 미뤄가며 적극적으로 응했다.
그러나 1시간 55분 진행된 회동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시작됐지만 안보와 민생 등 각 현안에서 크나큰 입장차를 드러내 향후 여야 협치에 험로가 예상된다.
박 대통령은 이날 회동에서 러시아·중국·라오스 순방 기간 이뤄진 미국·중국·러시아·일본 등 한반도 주변 4개 나라 정상과의 연쇄회담 결과를 설명하고, 국제사회와 공조해 대북제재 압박 강도를 더욱 더 높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드 배치에 대해서도 북한의 핵ㆍ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자위권적 조치임을 설명하면서 초당적인 협조를 다시 한번 강조했다.
일단 두 야당은 북핵 등 안보위기에 대해서는 초당적으로 협력한다는 입장을 밝히면서도 대북 문제를 풀기 위해선 제재와 대화를 병행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사드 배치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해 이견을 드러냈다.
박 대통령은 추 대표와 박 비대위원장에게 사드 배치에 대한 찬반을 "다그치듯 물었다"고 추 대표가 전했다.
이에 대해 추 대표는 "사드는 핵을 막을 수 없는 '백해무익'한 것"이라는 견해를 보였고, 박 비대위원장은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당론을 거듭 확인하면서 "북핵 문제와 사드 해법은 별개"라고 했다.
특히 추 대표는 북한 5차 핵실험 이후 정부·여당에 유리하게 조성된 '안보 정국'을 의식해 "안보 상황을 이용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이 심각한 상황을 '안보를 이용한다'고 하시면 안 된다"고 응수했다.
추 대표가 박 대통령이 김대중 정부 시절 북한을 방문한 사실을 거론하며 사실상의 '특사' 자격으로 다녀와지 않았느냐며 현 사태를 풀기 위한 '대북 특사' 파견을 제안하자, 박 대통령은 "당시 특사가 아니라 민간단체의 일원으로 다녀왔다"고 설명하며 추 대표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사드 배치 반대 여론을 주도해 온 박지원 대표는 "안보에 대한 초당적 합의를 위해서도 정부가 사드배치 비준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는 게 적절하다"면서 기존 주장을 되풀이했다. 그러면서 여․야․정 안보협의체 구성을 제안했다.
박 대통령은 박 비대위원장이 제안한 '여·야·정 안보협의체' 구성에 대해서도 "(안보는) 근본적으로는 대통령 중심으로 결정되는 사안"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추석을 앞두고 민생경제 이슈도 회동 테이블에 올랐다. 야당은 법인세 인상과 가계부채 문제, 사드 국회 비준, 누리과정 예산, 세월호 특조위 활동기간 연장,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등을 요구했다.
박 대통령은 법인세 인상과 관련해 “법인세 인하가 세계적인 추세”라며 현수준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특조위 활동기간 연장 문제에 대해서는 법 취지·사회부담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고, 검찰개혁 문제에 대해서도 ‘국민의 눈높이’를 기준으로 제시했다.
또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거취에 대해서도 직접적으로 언급하자, 박 대통령은 특별조사팀 조사 결과가 나오면 우 수석의 거취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 위원장은 이날 회동에서 북핵과 민생 문제 등 20가지 제안을 박 대통령에게 전달했고, 특히 추석을 앞두고 노동자 체불임금 해결이 시급하다며 범정부 차원의 대책을 강구해달라고 요청했다. 이 밖에 쌀 값 안정화 대책, 고수온 어업인 피해에 대한 지원 등을 요청했다.
반면 박 대통령은 이날 회동에서 노동개혁 등 4대 개혁 관련 법안과 경제 활성화를 위한 법안 처리에 국회의 적극적인 협조를 당부했다.
이처럼 양측의 의견이 일치하기는 커녕 이견만 확인하는 방향으로 흐른 끝에 공동 발표문 채택 시도조차 불발됐다.
회동을 마치고 박 대통령이 먼저 자리를 뜬 상태에서 이 대표와 이원종 청와대 비서실장이 사드 배치 등에 대한 '합의사항 발표'를 제안했으나 추 대표와 박 비대위원장은 "강요된 합의는 있을 수 없다"고 일축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