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사재출연과 그룹 차원에서의 지원을 약속했지만, 대한항공 이사회의 벽에 막혀 지원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어서다.
이 때문에 조 회장의 실질적인 한진해운 구제 의지가 있는 지에 대해서도 의심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1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지난 10일 오전 이사회를 열어 한진해운에 대한 600억원 지원 안건과 관련해 해운이 보유한 미국 롱비치터미널(운영사 TTI) 담보를 먼저 취득한 후 자금을 대여하는 조건으로 의결했다.
당초 회사 경영진은 신속한 지원을 위해 600억원을 먼저 집행하고, 나중에 담보를 설정하자고 이사회에 제안했다.
그러나 사외이사들은 법정관리에 들어간 기업 자산을 담보로 잡을 수 있는지 불확실한 데다 대한항공 주주들의 이익을 침해해 배임 등 법적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며 담보를 먼저 설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앞서 대한항공이 지난 8일과 9일 잇따라 개최한 이사회에서도 이런 의견 차이로 결론을 내리지 못했었다.
현재 한진해운은 롱비치터미널 지분 54%를 보유하고 있다.
롱비치터미널을 담보로 잡으려면 한진해운이 이미 담보 대출 중인 6개 해외 금융기관과 또 다른 대주주인 MSC(보유 지분 46%)로부터 모두 동의를 받아야 한다.
결국 이들 중 한 주체라도 동의하지 않으면 대출이 불가능한 셈이다. 당장 자금을 투입하지 못할 뿐 아니라 지원 여부도 불확실해진 것이다.
만약 전부 동의한다 해도 담보를 설정해 실제 자금을 집행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려 물류대란을 조기에 수습할 기회를 놓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결국 조 회장의 홀로 할 수 있는 선택은 사재출연의 조속한 집행뿐인데 이마저도 13일은 돼야 가능하다.
업계 안팎에서는 400억원만으로는 세계 곳곳에서 발이 묶인 한진해운 선박의 운항을 정상화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고 보고 있다.
조 회장은 올해 6월 말 기준 그룹 주요계열사인 한진칼 17.81%, 대한항공 0.01%, ㈜한진 6.87%, 정석기업 20.34%(올해 6월 8일 기준) 등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한진칼 주식은 시세로 따지면 2000여억원이 넘는 만큼 사재출연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다. 비상장사인 정석기업은 경우, 주식가치의 변동폭이 크기 때문에 일단 놔둘 것으로 점쳐진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전날 기준으로 조 회장과 자녀들인 조원태 대한항공 부사장,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 등 일가족이 보유한 한진그룹 상장·비상장 계열사 주식 가치는 4146억원으로 집계됐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빠른 자금투입이 안 돼 하역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경우, 물류대란의 장기화는 불가피하다”면서 “조양호 회장 일가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