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이수경 기자 = 정부가 제출한 추가경정예산안이 우여곡절 끝에 38일만인 2일 20대 국회 정기국회 본회의에서 통과했다. 여야는 지난달 31일 밤늦게까지 협상 끝에 가까스로 추경안 처리에 합의했지만, 정세균 국회의장의 개회사 문제로 여당이 일정을 보이콧하면서 난항을 겪었다.
추경안은 재석 의원 217명 가운데 찬성 210표, 기권 7표로 가결됐다. 주로 야당에서 주장했던 교육재정 지원과 복지예산 등이 증액됐다. 구조조정 등 추경 목적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왔던 외국환평형기금과 해운보증기구용 국책은행 출자분 등에서 삭감이 이뤄졌다.
◆ 4654억원 삭감, 3600억원 증액…교육·의료 등 복지예산 확충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예결위 간사는 이에 대해 "정부 원안에서 시급성이 떨어지는 사업, 집행률이 낮은 사업, 본예산 편성이 타당한 사업을 중심으로 해서 이번 추경의 사업요건에 부적합한 사업들을 위주로 총 4645억원을 삭감했다"고 설명했다.
우선 브렉시트(영국의 EU탈퇴) 등 대외여건 변화를 위해 확충키로 했던 외국환평형기금은 당초 정부가 낸 5000억원에서 2000억원이 삭감됐다. 이 기금은 대우조선이 운영자금 명목으로 자금을 받아 단기차입금 상환에 썼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퍼주기'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해운보증기구 출자 부문에서 산은 출자분 역시 1300억원에서 650억원이 깎였다. 기업투자촉진 프로그램을 위해 산은에서 2000억원을 출자키로 했던 것 역시 623억원 감액키로 했다. 무역보험기금 출연도 400억원 깎였다.
이밖에 관광산업 융자지원(-300억원), 국립대 노후선박 지원(-250억원) 등에서도 삭감이 이뤄졌다.
반면 증액분 3600억원은 대부분 교육을 비롯해 의료 등 복지예산에 배정됐다.
이 중 가장 많은 2000억원이 교육시설 개보수 부문으로 투입됐다. 학교 운동장 우레탄 교체, 섬마을 통합관사 설치 등을 위한 금액이다.
아울러 복지예산에는 총 1516억원이 추가로 투입된다. 의료급여 경상보조 부문에 800억원, 독감 등 국가 예방접종에 280억원이 증액됐다.
장애인 활동지원 사업비는 159억원을 늘렸고, 노인 일자리 확충사업은 2만개를 확충키로 했었지만 1만2000개가 추가되면서 48억원이 증액됐다. 발달 장애인 가족 지원에 48억원, 저소득층 생리대 지원 30억원, 노인돌봄 종합서비스에 17억원 등이 늘어나게 됐다.
◆ "지방교육채 상환 가능해졌다" 실리 챙긴 野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난산'이라고 표현할만큼 여야 협상은 쉽지 않았다. 물러서지 않은 강대강 대치국면이 이어지면서, 결국 8월 임시국회를 넘겼다. 9월 정기국회 전날 겨우 여야 합의가 성사됐지만, 본회의가 열리기도 전에 정기국회가 파행을 빚었다. 자칫 장기전에 돌입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지만 결국 정 의장이 사회권을 넘기면서 가까스로 본회의가 열리고 추경안이 통과됐다.
여야가 가장 첨예하게 대립했던 부분은 야당에서 누리과정(3~5세 무상보육) 예산 부담으로 급증한 지방교육채 상환을 지원하자고 요구했던 부분이다. 협상 끝에 교육시설 개보수 명목으로 증액된 이 부문을 야당에서는 우회적으로 채무상환에 이를 활용할 수 있게 됐다고 자축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학교 운동장 트랙을 우레탄으로 교체하기 위해 교육시설자금 목적 예비비를 교육청에 지원하면, 교육청은 이에 따른 여유자금이 발생해 채무를 상환할 수 있다는 얘기다. 간접적으로 누리과정 예산을 지원하는 효과다.
김태년 더민주 의원은 "교육부에서 정한 항목에 따라 목적예비비를 지방교육청에 내려보내주는데, 지방교육청들은 추경을 통해 다른 용도로도 활용을 할 수 있다"면서 "어떤 목적으로 내려보낸다고 해도 지방교육청이 탄력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야당이 교육재정에 복지예산까지 확보하며 실리를 챙긴 셈이다.
여당으로서도 할말은 있다. 2000억원의 교육시설 예비비 한도를 지켜내면서 재정원칙 사수라는 명분을 살려냈다. 주광덕 새누리당 예결위 간사는 "저희는 교육환경 개선을 위한 시설 지원을 위한 목적으로 예비비를 편성한 것이며, 지방채 상환을 국고로 지원해 주는 것은 현행법상 위반 사항이다"라고 말했다.
이에 김동철 국민의당 예결위 간사는 "국가가 지방교육청을 지원한 것을 지방교육채 상환으로 쓸 수 있는 것이다"라며 "정치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맞받아쳤다. 김태년 간사 역시 "기술적으로 얼마든지 가능한 문제"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