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제공]
아주경제 김은하 기자 = 1923년 조선 경성에서 폭탄 36개, 권총 5자루가 발견됐다. 이 사건으로 의열단원 18명이 잡혔다. 경기도 경찰부 고등경찰과 경부 황옥(黃鈺)도 포함됐다. 그는 법원에서 “일본 경찰 관리로 임무 완수를 위해 노력했다. 성공하면 경시까지 시켜준다는 말을 믿고 시킨 대로 밀정(남의 사정을 은밀히 정탐하여 알아내는 자)을 한 것이다”라고 진술했다. 황옥은 일본 경찰인 척하는 의열단이었을까, 의열단인 척하는 일본 경찰이었을까. 역사는 판단을 유보했다.
감독 김지운이 영화 ‘밀정’으로 100년이 다 되어가도록 풀리지 않은 의문을 극화했다. 황옥을 모티브로 한 인물 이정출은 송강호가 연기했다. 그의 눈빛은 영화 시작부터 영화 끝까지, 러닝 타임 140분 동안 내내 흔들린다.
“일제강점기를 살아낸 우리의 모습은 거의 모든 작품에서 항일과 친일로 극명하게 이분화되곤 했죠. 하지만 그렇게 분명하게 나뉠 수 있을까요? 대부분 그 경계에서 흔들렸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정출도 그런 인물이죠.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친일을 하지만 그의 마음은 자책감과 죄책감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쳤겠죠. 우리 영화는 그 시대의 사건이나 역사가 아니라, 시대의 역풍을 온몸으로 맞으며 선택의 기로에 내몰린 개인에 집중합니다. 그 점이 새롭게 다가왔죠.”
[사진=영화 '밀정' 스틸]
영화의 시작은 일본 경찰 옷을 입고 일본 경찰 무리와 함께 의열단의 핵심세력 김장옥(박희순 분)을 잡기 위해 내달리는 이정출의 모습이다. 이정출은 과거 의열단의 동지였던 김장옥을 체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면서도 행여 그가 죽기라도 할까 전전긍긍한다. 송강호는 그런 이정출을 “시대가 낳은 사생아”라고 표현했다.
‘밀정’은 김지운 감독과 함께한 네 번째 작품이다. 둘은 ‘조용한 가족’ ‘반칙왕’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을 거치면서 한국 영화에 없던 장르, 예측 불가능한 캐릭터를 창출했다. 세월로 따지면 20년이다.
[사진=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제공]
“김지운 감독이 제안한 작품은 모두 출연했어요. 김 감독이 모든 작품을 저에게 주는 게 아니니까, 저에게 맞는 작품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제안했을 거라는 믿음이 있죠. 사실 이정출은 연기하기 아주 까다로운 캐릭터예요. 이렇다 할 원인도 없이 크게 흔들리는 감정을, 흔들리는 순간조차 변곡이 선명하지 않은 감정을 설득력 있게 보여줘야 했으니까요. 참 신기한 게요, 출연을 주저한 이유가 출연을 결심한 이유가 되곤 해요. 거절과 승낙의 이유가 같다는 말이죠.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도 세 번이나 거절했어요. 너무 충격적이고 파격적이어서요. 하지만 그 이유로 출연을 결정했죠. ‘밀정’도 그 미세한 감정의 변화 때문에 고민했지만, 결국 그것 때문에 함께하게 됐죠.”
송강호는 “김 감독의 세련된 연출미가 빛났다. 내가 나온 영화를 본다는 게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라 보통 한 번 겨우 보는데, ‘밀정’은 두 번 보고 싶은 기분이 들더라”라며 낄낄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