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최신형 기자 =8월 임시국회의 최대 과제인 추가경정예산(추경) 처리가 회기를 하루 남기고 막판 진통을 겪다 최종 무산됐다. 여야는 30일 오전 9시 국회 본회의에서 11조원 규모의 추경안을 처리키로 했지만,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 예산과 개성공단 폐쇄 피해기업 지원 예산 등에 가로막혀 의결 시도조차 하지 못한채 31일 재논의키로 했다.
앞서 여야 3당이 지난 25일 추경 처리를 비롯해 ‘백남기 농민 청문회’ 등에 합의한 지 닷새 만에 협치를 걷어찬 셈이다.
◆해묵은 의제에 막힌 추경… 핵심 쟁점 살펴보니
추경 처리 진통의 핵심 쟁점은 누리과정 예산 6000억원과 개성공단 폐쇄 피해기업 지원 예산 700억원 처리 등을 담은 야당의 새로운 추경안이었다. 야권은 이밖에도 △초·중·고 우레탄 트랙 교체사업 776억원 △도서지역 통합관사 신규 건설 예산 1257억원 등도 요구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여야 간사는 이날 새벽까지 마라톤 협상을 이어갔지만, 접점을 찾는 데 실패했다. 추경 처리 파행은 전날(29일)부터 감지됐다. 앞서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위원들이 전체회의에 앞서 소위원회를 열고 ‘2015년 세계잉여금’ 잔액 1조2000억원 가운데, 6000억원에 대해 시·도교육청 지방교육채무 상환 전환을 골자로 하는 추경안을 단독 처리하자 새누리당 소속 위원들은 “의회 폭거”라고 반발하며 집단 퇴장했다.
특히 문제가 된 부분은 새로운 추경안에 필요한 재원 조달이다. 야권은 외국환평형기금(외평기금·환율 안정을 목적으로 조성되는 기금) 출자 예산 5000억원과 산업은행 지원 기업투자촉진프로그램 등 정책금융예산 4000억원의 감액을 통해 필요 재원을 조달하자고 주장했다.
더민주는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Brexit)에 따른 환율 변동이 미약한 만큼, 외평기금 출자 예산의 40∼60%를 삭감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최소 2000억원, 최대 3000억원 규모인 셈이다. 앞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1000억원가량의 외평기금 출자 예산을 삭감, 예결위로 넘겼다.
◆산은 4000억 현금출자 난관… 경제 골든타임 ‘빨간불’
산업은행 현금출자 4000억원도 걸림돌이다. 더민주는 산은의 기업투자촉진 프로그램 2000억원이 은행의 자기자본비율(BIS)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다는 이유로 삭감 대상으로 본다. 해운보증기구 공공부문 출자금 1300억원도 민간투자율 증가와의 상관 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만큼, 삭감을 요구한다. 이 최소 삭감액 6000억원을 누리과정 예산으로 보전하자는 얘기다.
여야는 이날 추경 무산의 책임을 상대 당에 돌리며 ‘네 탓’ 공방으로 일관했다.
새누리당은 “합의안에 잉크도 마르기 전이 아니냐”며 강하게 반발했다. 근거는 헌법 제57조다. 동 조항은 ‘국회는 정부의 동의 없이 정부가 제출한 지출예산 각 항의 금액을 증가하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정현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열고 “야당은 절대 믿을 수 없는 집단”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정진석 원내대표도 “오늘 중 추경안을 처리하지 않으면 백남기 사건 청문회, 조선·해운업 구조조정 청문회도 없다”고 말했다.
더민주는 “민생 문제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며 정부·여당의 ‘획기적 변화’를 촉구했다. 우상호 원내대표는 같은 날 국회에서 소집한 긴급 의총에서 “정부의 추경안은 보잘것없는 부실 예산”이라고 말했다.
국민의당은 거대 양당 사이에서 줄타기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의총에서 “추경안은 불가피한 선택으로 오늘 반드시 통과돼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의당은 누리과정 예산 협상에서 중재안을 내며 캐스팅보트 역할에 나선 상황이다.
문제는 추경 효과다. 타이밍이 생명인 추경 처리 지연이 현실화될 경우 올해 3분기 조기 집행이 사실상 물 건너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3분기와 4분기 분할 집행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앞서 국회 예산정책처는 추경을 3·4분기에 분할 집행한다면, 올해와 내년도 성장률은 0.318%에서 0.303%포인트로 하락하고 고용창출 효과도 6만9000개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추경 처리 여부와 관계없이 정치권이 근본적인 해결책을 강구하지 않는다면, 갈등 조정 기능을 상실한 국회가 민생을 발목 잡는 하수 정치가 20대 국회 내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