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르미 그린 달빛 실제역사’조선 개혁하려 한 세자ㆍ왕 연이어 의문사

2016-08-29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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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구르미 그린 달빛'[사진 출처: KBS '구르미 그린 달빛' 3회 예고 영상 캡처]

아주경제 이광효 기자=KBS '구르미 그린 달빛'이 방송 초기부터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가운데 ‘구르미 그린 달빛’ 주인공 효명세자 이영(박보감 분)을 비롯해 조선 중기 이후 조선을 개혁해 기울어져가는 조선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 한 세자나 왕이 연이어 의문사당한 비극의 역사에 다시금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효명세자 이영은 18세인 1827년 2월 부왕 순조의 건강 악화를 이유로 대리청정(代理聽政)을 하게 됐다. 이후 세도정치 타파와 왕권 강화를 위해 총력을 기울여 안동 김씨 계열을 배제하고 새로운 인물을 널리 등용했다. 호적법을 정비하고 형옥(刑獄- 형별과 옥사)을 신중하게 했다.

그러나 효명세자는 1830년(순조 30) 윤4월 말에 각혈한 뒤 며칠 만에 21살의 혈기 왕성한 나이에 승하했다.(5월 6일). 이후 조선은 기나긴 세도정치 시대로 접어들었고 결국 일본에 의해 망하고 말았다.

효명세자는 이전에도 수두(3세. 1812년 10월 18일)와 홍역(13세. 1822년 11월 24일)을 앓았지만 순조롭게 왕자를 낳는 등(1827년 7월 18일 헌종 출생) 건강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런 효명세자가, 그것도 21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각혈을 한 다음 갑자기 사망한 것이다.

인조의 맏아들인 소현세자의 의문사는 지금도 많은 역사학자들이 매우 안타까워하는 죽음이다. 병자호란에서 조선이 패해 소현세자는 1637년부터 1645년까지 청나라에 억류돼 있었다. 그 기간 동안 소현세자는 서양 문물과 천주교를 접했고 새로운 문물과 사상에 눈을 떴다. 소현세자는 시대가 변하고 있음을 깨닫고 자신이 왕이 되면 조선을 혁신하리라 결심했다.

만약 소현세자가 왕이 됐으면 조선은 수백년 일찍 자주적인 근대화를 이룰 수 있었을 것으로 역사학자들은 보고 있다.

하지만 소현세자는 1645년 음력 2월 귀국한 후 그해 음력 4월 26일에 창경궁(昌慶宮)의 환경전(歡慶殿)에서 갑자기 죽었다. 그의 죽음에는 인조가 연루됐을 가능성이 지금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인조는 일국의 세자가 갑자기 죽었음에도 담당 의관을 비호하는 데 급급했고 세자를 소현세자의 아들이 아닌 봉림대군으로 정했다.

조선의 마지막 개혁 군주 정조에 대해서도 독살설이 지금도 강력히 제기되고 있다. 정조는 재위 18년째인 1794년에 발병한 절후(癤候), 즉 부스럼이 피부를 파고드는 병이 격무와 과로로 아주 심해져 1800년 6월 28일에 48세로 사망했다.

그러나 정조가 사망했을 당시 정조에게 처방됐던 '연훈방'은 수은 중독 우려가 있는 처방이었고 '경옥고'는 종기에는 매우 해로운 처방이었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지만 소현세자가 왕이 돼 자신의 큰 뜻을 펼쳤다면, 정조가 죽지 않고 지속적으로 개혁을 추진했다면, 마지막으로 효명세자만이라도 죽지 않고 왕이 돼 자신의 뜻을 펼쳤다면 우리나라 역사는 지금보다 훨씬 좋은 방향으로 흘러갔을 것이다. 비극적이고 분한 생각마저 들게 하는 의문사들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KBS '구르미 그린 달빛'은 매주 월화 오후 10시에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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