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1955년 5월 5일은 이용익(李容翊)이 보성전문학교(普成專門學校)를 설립한 날로부터 계산하여 고려대학교(高麗大學校) 개교 5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인촌(仁村) 김성수(金性洙)는 그가 그렇게 정열을 쏟았던 고려대학의 50주년 기념행사를 3개월 앞두고 세상을 뜨고 만 것이다. 목당(牧堂) 이활(李活)이 막 재단 주무이사(主務理事)로 취임해 보니 학교는 기념행사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고려대학교는 이용익·손병희(孫秉熙)·김성수로 이어지는 역대 교주(校主) 세 사람에 의해 발전되어 왔던 것으로 50주년 기념의 좌표는 이들 세 사람의 업적에 두어져야 할 일이었다. 다행히 보성전문학교 설립자 이용익과 수난기에 처한 보성전문한교를 경영한 손병희, 보성전문학교를 부흥시키고 고려대학교를 설립한 인촌, 고려대학교 초대총장을 지낸 현상윤(玄相允) 등의 초상화가 완성되어 있었다.
한편 인문과학·사회과학 부문의 방대한 논문집도 마련되어 있었을 뿐 아니라 그동안 고려대학은 보성전문학교의 교가(嬌歌, 이광수(李光洙) 작시(作詩) 김영환(金永煥) 작곡(作曲))의 교가 가운데 후렴의 ‘보성전문’을 ‘고려대학’으로 고쳐 채용해 왔었다. 더구나 ‘젊은 가슴 숨은 생명 힘 넘쳐 뛰노다’하는 보성전문학교의 교가는 가사가 매우 웅장하고 씩씩하나 일제 항쟁 때의 투쟁정신으로 가득 차 있어서 독립된 나라의 교가로서는 적당치 않았다. 곡조도 새시대에 맞지 아니하므로 개교 5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문과대학 교수 조지훈(趙芝薰)의 작사와 윤이상(尹伊桑)의 작곡으로 새 교가가 준비되고 있었다.
오늘 불려지고 있는 교가가 바로 그것이다. 후렴에 ‘자유 정의 진리의 / 전당이 있다 / 고려대학교 고려대학교 / 마음의 고향 / 고려대학교 고려대학교 / 영원히 빛난다’로 불려지는 교가가 그것이다.
교기(校旗)와 교장(校章, 학교의 휘장) 또한 그동안 보성전문학교의 그것에 보성전문학교를 고려대학교로 고쳐 써넣은 것을 사용해 왔으나 고려대학의 전통과 교육이념인 자유·정의·진리를 상징할 수 있는 교기를 제정할 필요성에서 새 교기가 마련되었다.
오늘의 진홍색 바탕에 순형(楯形, 방패 모양)의 교장을 그린 것으로서, 아래에는 황색 솔을 드리운 것이다. 진홍색은 활기 또는 정열을 상징한 것이라고 했다.
이로부터 진홍색은 고려대학교의 교색(校色)이 되어 고려대학교에서 수여하는 박사학위(博士學位)의 후드와 그 밖의 여러 가지 경우에도 사용하게 되었다.
기봉(旗棒)은 황금색 실드형(型) 안에 범의 머리를 부각한 것 3개를 배합하였는데 이것은 교장의 일부를 채용한 것이다. 고장도 유진오 총장이 외국 대학의 본을 따서 실드형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실드형 상부는 녹색, 하부는 백색 바탕인데 녹색은 평화를, 백색은 결백과 청렴을 뜻했다. 옛날부터 평화를 사랑하고 겸손을 숭상한 우리 민족성을 표현한 것이다.
상부(上部) 녹색 바탕 위에는 3권의 책을 새겼는데, 이는 교육목표인 자유·정의·진리를 가리킨 것이다. 그리고 백색 바탕 위에 고려대학교의 동물 상징인 범의 머리를 그리고, 그 앞에 아라비아 숫자로 창설 년도인 1905를 기입하고 있다.
범을 고려대학교의 동물 상징으로 삼은 내력은 알 수 없으며, 그 누구도 어느 때 누가 정한 것인지 확실히 말해 주는 사람은 없었으나 옛날 보성전문학교의 응원단기(應援團旗)에 사용되었던 것만은 사실인 듯하다. 1933년에 인촌이 보성의 본관건물을 지을 때 화강석에 범의 머리를 조각한 것을 정면 입구 양편에 배치한 것을 보면 오래 전부터 사용한 것임에 틀림없었다. 교복과 배지의 제정도 이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