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이 시작됐다. 하지만 국내 보험·카드사 수장들에게는 남의 얘기다. 이들은 휴양지 대신 자택을 택하거나, 휴가를 반납하고 하반기 사업계획을 가다듬고 있다. 브렉시트와 저성장 등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의 위기감이 커진 데다 새로운 회계기준인 IFRS4-2단계 도입·자살보험금·카드가맹점 수수료 인하 등 산적한 문제도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창수 삼성생명 사장은 8월 첫째 주 짧은 일정으로 휴가를 계획하고 있다. 삼성생명이 32년만에 을지로에서 서초동으로 이동하는 대이사를 앞두고 있는 데다 새 회계기준 IFRS4-2단계 도입을 앞두고 관련 태크스 포스팀도 점검해야하기 때문이다. 자살보험금 지급 거부 등으로 금융당국의 내사를 받은 탓에 어수선한 내부 분위기도 추스려야 한다.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과 차남규 한화생명 사장도 휴양지 대신 자택에서 하반기 경영전략을 짤 계획이다. 생보사들은 저금리 영향으로 역마진에 대한 우려와 IFRS4-2로 인한 자본확충도 시급하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CEO들은 워낙 워커홀릭인데다 최근에는 업계 분위기도 좋지 않아 장기 휴가를 즐기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LIG손보와의 통합작업으로 바쁜 취임 첫해를 보내고 있는 양종희 KB손해보험 사장도 따로 휴가 계획을 잡지 않았다. 임금피크제 문제를 놓고 노조와 협의해야 할 사안들이 많고, KB금융지주에 편입된 지 이제 막 1년차에 접어든 만큼 내부 통합이 시급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점 통폐합을 추진하고 있는 김용범 메리츠화재 사장도 여름휴가는 없다. 김 사장은 하반기 경영전략으로 ‘초대형 점포’를 제시하면서 지역본부 221개를 절반으로 줄이는 조직개편을 실시했다. 이를 놓고 노조와 GA업계와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는 만큼 현장에 머물며 문제해결을 위한 방안 마련에 몰두할 것으로 보인다.
카드업계 총수도 여름 휴가를 즐기기 힘든 상황이다. 업계 전반에 드리운 위기의 그림자를 걷어낼 미래 먹거리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카드사는 현재 가맹점 수수료 인하, 모바일 페이 확대, 은행권 중금리 대출 활성화 등으로 어려움에 처해있다.
원기찬 삼성카드 사장은 휴양지 대신 현장을 택했다. 신규사업인 모바일 부문 강화와 O2O사업에서 실적을 내기 위한 전략을 가다듬을 예정이다.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휴가 계획을 못잡았다. 대신 현장 경영의 고삐를 죈다.
위성호 신한카드 사장은 8월 초 휴가를 내고 자택에 머물며 하반기 경쟁력을 끌어올릴 사업 전략을 짤 계획이다. 취임 첫해를 맞는 윤웅원 KB국민카드 사장도 특별한 휴가 계획을 잡지 않고 자택에서 쉬며 하반기 경영구상에 들어간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눈치를 봐야하는 직원들 사이에선 볼멘소리가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권 관계자는 "CEO가 일하기 때문에 부서장들도 눈치를 보면서 휴가를 미루고 있고, 담당 직원들도 장기 휴가를 못쓰는 분위기다"며 "외국계 기업에 다니는 친구들이 2주일간 충분히 휴식하는 것을 보면 부러울 뿐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