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김근정 기자 = 네덜란드 헤이그 상설중재재판소(PCA)가 결국 필리핀의 손을 들어줬다.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이 국제재판소의 인정받지 못하면서 미국과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관련국의 중국에 대한 반발과 압박 수위도 한층 높아질 전망이다. 하지만 중국은 이러한 판결을 수용할 수 없다며 기존의 입장을 지속하겠다는 뜻을 천명했다.
PCA는 12일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의 근거가 되는 남해 9단선(南海九段線)을 입증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PCA는 판결문에서 "중국과 다른나라의 항해사와 어민이 역사적으로 남중국해 지역을 이용해왔지만 중국이 이 지역과 자원을 독점적으로 지배했다는 근거는 없다"고 밝혔다.
PCA는 스카보러 암초(중국명 황옌다오) 지역의 육지 지형물에 대해 '섬'으로 보기 힘들다고 판결했다. 유엔해양법협약은 사람이 거주하고 경제활동이 가능한 섬은 영해(12해리), EEZ(200해리)를 확보할 수 있지만 단순 암초는 영해만 가질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결국 중국의 스카보러 암초를 기반한 EEZ 주장은 인정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내려진 것이다.
▲ 중국, "불법적인 결과물, 수용은 없다"
중국은 즉각 반발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보도에 따르면 시진핑(習近平) 중국 주석이 이날 베이징 댜오위타이에서 중국-유럽연합(EU) 정상회의 참석차 중국을 찾은 도날드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과 장 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과 만나 "남중국해 도서는 중국의 영토로 PCA의 판결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밝혔다.
중국 외교부도 PCA 판결 공개 후 즉각 홈페이지 성명을 통해 "PCA 판결은 악의적 결과로 남중국해 평화와 안정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며 "중국 영토주권과 해양권익은 변함이 없다"고 주장했다.
중국 신화망(新華網) 등 관영언론은 판결 결과가 나오는 시간에 맞춰 판결 내용을 반박하는 정부 성명을 공개했다. 성명에는 중국인이 남중국해에서 활동한 역사가 2000여년에 달하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으로부터 남중국해 섬들에 대한 주권을 회복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1948년 이러한 상황을 그대로 구현한 지도를 전 세계에 공개했고 이후 관련 성명과 법에도 남중국해 주권이 언급됐다고 강조했다.
또, 유엔해양법공약에 의거해 중국은 남중국해 영토 주권과 해양권익을 꾸준히 수호해왔고 이를 침해하는 모든 행위를 반대하며 분쟁은 당사국간 해결을 원한다는 기존 입장도 재차 천명했다.
중국 외교부 등 관련당국은 계속해서 판결을 수용할 뜻이 없음을 강조해왔다.
중국 관영언론 환구시보에 따르면 루캉(陸慷)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PCA 판결이 나오기 대략 2시간전에 열린 12일 정례브리핑에서 "중국은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과 관련한 그 어떤 결과도 수용하지 않는다"는 명확한 입장을 밝혔다.
루 대변인은 "중국은 처음부터 중재판결을 인정하지 않았고 이는 변함없다"면서 "중재재판 자체가 필리핀의 일방적인 요구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전날 정례브리핑과 마찬가지로 중재 판결을 '둥시(東西 물건)'으로 비유하며 '무의미한 결과'임을 강조했다.
중국 국방부 양위진(楊宇軍) 대변인도 12일 "중재재판소의 결과가 중국의 남중국해 영해주권과 해양권익에 영향을 줄 수 없다"면서 "중국 인민해방군은 주권과 해양권익 수호를 위해 계속 애쓸 것"이라고 밝혔다.
양 대변인은 지난 8일 "남중국해에 미국이 온다해도 두렵지 않다"며 "친구가 오면 술을, 승냥이가 오면 사냥총을 준비하고 기다릴 것"이라는 날선 발언도 내뱉은 바 있다.
특히 중국은 PCA가 남해구단선에 대한 판결을 할 권한이 PCA에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유엔해양법협약은 PCA에 영유권이나 해양경계 확정에 대해 판결할 권한을 부여하지 않고 있다.
PCA가 언급한 남해구단선은 국민당 정부 시절인 1947년 '11단선'으로 처음 등장했다. 1949년 등장한 중화인민공화국이 이를 승계, '9단선'으로 수정했다. 이에 따르면 남중국해 90% 이상이 중국의 영해로 포함된다.
▲ 일본, 필리핀 "중국 재판 결과 따라야"
일본 정부는 판결 결과 공개와 동시에 중국에 이를 따를 것을 촉구했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은 PCA 판결 공개 직후 성명을 발표하고 "이번 중재판결은 최종적인 것으로 분쟁당사국을 법적으로 구속한다"면서 "당사국은 이를 따라야 한다"고 밝혔다.
또 "일본은 해양분쟁 해결에 있어 힘과 위압이 아닌 평화적 수단 활용이 중요하다고 일관되게 주장해왔다"면서 "당사국의 판결 수용으로 남중국해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중재재판을 요구한 필리핀도 PCA의 판결을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외신에 따르면 페르펙토 야사이 필리핀 외교장관은 판결 공개 후 기자회견에서 "남중국해 영유권 관련 중재 판결 내용을 환영한다"면서 "이는 분쟁해결에 중요한 의미가 있고 필리핀은 이를 존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반발을 의식한 듯한 발언도 덧붙였다. 야사이 장관은 "당사국은 긴장을 고조시키는 행위를 자제하고 냉정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