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최신형 기자 =여야가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를 둘러싼 딜레마에 빠졌다. 제20대 국회 초반 무더기로 쏟아진 비리 파문이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로 불똥이 튀면서 혁신 경쟁에 나섰지만, 정작 특권 폐지의 정점으로 가는 길목에선 멈칫하는 모양새다. ‘눈먼 돈’ ‘쌈짓돈’으로 불리는 특수 활동비가 대표적이다.
또한 헌법 개정 없이 불가능한 면책 특권 폐지 등에 목소리를 내는가 하면, 이를 놓고 여야가 극심한 견해차를 보이면서 권력남용 방지 대책이 또다시 용두사미로 전락할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묻지마식 특권 폐지’는 정치혐오론을 기반으로 하는 반(反)정치 현상만 심화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6일 여야와 전문가들에 따르면 국회의원 특권 폐지 딜레마는 국회의원 특수 활동비를 비롯해 △불체포·면책 특권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 등 크게 세 가지다.
비난 여론이 가장 거센 것은 국회의원 특수 활동비다. 이는 국가의 기밀 유지가 요구되는 정보 및 사건 수사, 이에 준하는 임무에 소요되는 경비다. 지급 대상은 국회 의장과 부의장단, 상임위원장, 여야 원내대표 등 일부다. 올해 특수 활동비로 책정된 예산은 84억원이다.
문제는 지급 규정이 없어 별도의 영수증 처리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성역 중 성역인 ‘옥상옥’ 특권인 셈이다. 지급 규모는 여당 원내대표는 월 5000만원, 야당 원내대표는 월 4000만원, 각 상임위원장은 월 1000만원 정도 지급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세금의 사적 유용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19대 국회에서 약속한 전액 카드 결제는 어느새 ‘공중분해’됐고, 특수활동비 폐지를 골자로 하는 법안은 소관 상임위에서 2년 넘게 계류하다가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20대 국회 역시 이 문제에 대해선 침묵 중이다.
이재교 세종대 교수(변호사)는 이날 아주경제와 통화에서 특수활동비 등을 비롯해 각종 국회의원 특권에 대해 “(민주화 시대에는) 전혀 필요 없는 구시대 유물”이라고 비판했다. 기획재정부가 집행하는 특수활동비는 국회 외에도 국가정보원과 검찰·경찰·국방부 등이 사용하는 만큼, 이들에 대한 견제 장치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특권은 구시대 유물” vs “면책특권은 특혜 아냐”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허위 폭로’ 등 헛발질로 촉발한 면책특권도 논란거리다. 면책특권은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에 국회 밖에 책임을 지지 아니하는 특권으로, 헌법(제45조)에 명시된 권리다. 의회 민주주의 시작인 영국의 명예혁명(1688년) 이듬해 제정된 권리장전(1689년)이 시초다. 헌법 개정 없이는 사실상 폐지 자체가 어려운 셈이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가 면책 특권 폐지에 대해 “옳지 않다”며 반대 의견을 제시한 것도 행정부에 대한 입법부 견제의 역사와 무관치 않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면책 특권에 대한 역사적 맥락을 봐야지, 무조건 특혜라고 비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면책 특권을 비롯해 ‘방탄 국회’ 오명을 떠안은 불체포 특권에 대해 ‘폐지에 준하는 방향의 묘수’를 찾겠다는 입장이다. 국회의원 체포동의안의 국회 본회의 보고 후 72시간 내 표결이 없을 때 자동 상정하는 방안 등이 유력하다.
오는 9월 시행인 ‘김영란법’ 적용 대상에 국회의원이 빠진 것도 20대 국회 내내 화약고로 작용할 전망이다. 동법의 적용 대상은 모든 공공기관, 사립학교 유치원의 임직원, 사학재단 이사장, 언론사 임직원 등이다.
애초 원안에 있었던 국회의원은 ‘이해충돌 방지 조항’을 제외하면서 빠졌다. 선출직 공무원의 민원 청탁의 길을 열어둔 것이다. 일종의 ‘네가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다. 이해충돌 방지 조항이 유지됐다면, 서영교 더민주 의원 등의 친인척 채용을 봉쇄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논란은 20대 국회 내내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