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6일 개봉한 영화 ‘봉이 김선달’(감독 박대민·제작 ㈜엠픽처스 SNK 픽처스·제공 배급 CJ 엔터테인먼트)은 임금도 속여먹고, 주인 없는 대동강도 팔아 치운 전설의 사기꾼 김선달의 사기극을 그렸다.
이번 작품에서 조재현은 조선 팔도 담파고(담배) 매매와 유통을 독점해 막강한 부와 권력을 거머쥔 성대련 역을 맡아 열연했다. 특히 조재현은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로 극의 무게를 더하며 성대련이라는 인물을 더욱 입체적으로 그려냈다는 평을 얻고 있다.
“그동안 너무 무거운 영화들을 해왔기 때문에 신나고 경쾌한 작품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너무 한쪽에만 치중된 건 아닐까 싶었던 거예요. 기존에 독립영화에 대한 이미지가 강해서 이런 상업영화에서는 섭외가 안 들어오기도 해요. 슬슬 그런 이미지를 깨부숴야지! 하하하. 이 작품이 시작점이지 않을까요?”
그의 말마따나 대중에게 배우 조재현이란 김기덕 감독의 영화 ‘악어’나 ‘나쁜남자’ 또는 전규환 감독의 ‘무게’ 속 인물로 일컬어진다. 상업영화보다는 독립·예술 영화 배우라는 인식이 짙고, 흥행보다는 작품성이 강한 영화들을 선호할 거라 짐작했다. 하지만 조재현은 늘 연기에 목말랐고 다양한 작품에 대한 호기심을 느껴왔다. 그야말로 ‘봉이 김선달’은 그에게 편견을 깰 수 있는 작품이자 시작점인 셈이었다.
“‘봉이 김선달’의 경우, 톤 조절이 중요한 작품이었죠. 그간 제가 해온 악역만큼 세고 강한 느낌을 강조한다면 밝고 경쾌한 영화의 느낌과 동떨어질 거로 생각했어요. 영화 자체가 파스텔톤인데 홀로 유화 물감의 느낌을 낼 순 없잖아요. 억누르기도 하고 의상의 도움을 받기도 했죠. 특히 제 의상을 흰색 도포로 한 건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아요. 적당히 극 중 인물들과 섞이면서 성대련만의 이미지를 줄 수 있었죠.”
그는 얼마 전 종영한 KBS2 드라마 ‘국수의 신’에 이어 또 한 번 악역을 연기하게 되었다. “연달아 악역으로 출연한다는 것”이 배우에게 걱정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짐작했다.
“다행히 ‘국수의 신’과 ‘봉이 김선달’의 캐릭터는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성대련의 경우에는 정치가라는 느낌이 강했죠. 모두가 비난하지만 홀로 ‘옳은 행동이다’, ‘애국자다’하고 생각하는 느낌으로요. 멀리 볼 필요도 없이 실제로도 우리 주변엔 그런 인물들이 많잖아요? 성대련은 왕을 믿지 못하고 왕 대신 내가 나서겠다는 입장이죠. 잘못된 정치가 같은 느낌으로 연기했어요. 반면 ‘국수의 신’은 살기 위해 이익을 위해 악행을 저지른다는 생각으로 연기했죠. 이런 차이점이 있어서 연기에 있어서 마음가짐도 달라져요. 하하하. 당분간 악역 안 하려고요. 밑천이 거덜 났어.”
조재현은 거침없는 언어들로 불쑥불쑥 의외의 답을 내놓곤 했다. “영화와 드라마 작품을 공평하게 오가는 것”은 “(영화계가) 날 찾지 않기 때문”이란다. 베테랑 배우의 입에서 튀어나온 예상 밖의 대답에 얼떨결에 “왜냐”고 되물었다.
“영화 쪽은 ‘당신 아니면 안 돼!’라는 작품이 많지 않아요. 하하하. 내가 열심히 하지 않아서 그렇겠죠. 상업영화에서도 잘해낼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하는데. 더 열심히 해야겠죠.”
예상 밖의 답변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으레 중년의 베테랑 배우라면 “아이돌 연기자를 싫어할 것 같다”는 편견에 사로잡히곤 하는데, 조재현은 “싫어하지 않는다”며 답답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아니, 하물며 제작사들도 그런 이야길 해요. ‘이번 작품에 아이돌이 출연해요. 조재현 씨가 싫어하지 않을까요?’ 하고. …아냐! 나 안 싫어해. 하하하. 요즘 아이돌 연기자들은 연기도 자세도 다 준비돼 있어요. 특히 내가 만난 아이들은 다 좋았죠. 티아라 효민이나 B1A4 바로, 엑소 시우민도 다 좋은 친구들이었죠. 다만 아이돌을 떠나서 예의 없는 친구들은 좀…. 실력에 예의까지 갖췄다면 대환영이죠.”
많은 후배 연기자들 가운데서도 배우 유승호는 단연 돋보이는 존재였다. 조재현은 유승호에 대해 “이런 친구들만 있다면 행복하게 촬영할 수 있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많은 스타를 만나보고 얘기도 들었는데 유승호 같은 친구들만 있으면 촬영 현장이 행복할 것 같아요. 할리우드도 그렇고 우리나라도 아역배우가 성인배우가 되기까지 많은 일을 겪잖아요. 그 친구들이 건방져진다는 게 아니라 주변 환경이 급격하게 달라지니까 그걸 경계하면서 가기가 힘들다는 거죠. 그런데 승호는 그걸 잘해냈고 선·후배며 스태프들까지 배려할 줄 안다는 게 훌륭해요. 선배인 제게도 귀감이 되는 후배죠. 이런 배우들만 있으면 참 훈훈하겠다 싶어요.”
데뷔 27년. 배우로서 살아온 시간은 치열했고 뜨거웠다. “긴 시간 동안, 배우로 살아갈 수 있었던 원동력이나 노하우”를 묻자 그는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않는 것”이라며 오랜 시간 갈고 닦았을 대답을 내놓았다.
“몸에 배어나요. 일희일비하지 않는 것이요. 뭐가 잘 되더라도 오래 담지 않는 것이 좋죠. 그래야 상처도 덜 받고요. 최선을 다하지만, 결과는 겸허히 받아들이게 되었어요. 독립영화가 관객이 많이 들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시작하니까 상처를 안 받게 되고요. 매니저가 저와 20년 지기인데 저를 두고 ‘큰일은 무던히 넘기면서 작은 일에 화를 낸다’고 하더라고요. 하하하. 댓글 같은 거에 열 내는 걸 말하는 건가. 어휴. 중독성 있더라고요. 댓글들이. 하하하. 이제는 자주 안 보지만요.”
지난해부터 그는 드라마·영화·연극 등 다양한 분야를 오가며 바쁜 나날을 보내왔다.쉴 새 없이 달렸던 그이기에 다음 작품도 정해졌을까 궁금해졌다.
“아뇨, 일단 7~8월에는 쉴 생각이에요. 밀렸던 일들이 있어서 조금 천천히 결정하자는 마음이에요. 제가 지난해 만든 영화가 있는데 그것도 잘 다듬어서 선보이고 싶고요. (배우 박혁권 주연의 영화 ‘나홀로 휴가’의 이야기다) 처음 만든 것 치고는 나쁘지 않은 정도에요.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