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윤은숙 기자 =2016년 중반을 넘어선 세계가 고립주의로 방향을 틀고 있다.한때 신자유주의를 등에 업고 세계는 하나의 시장이라고 외쳤던 글로벌리즘(globalism)은 반이민 정서와 국내중산층 붕괴 등의 부작용으로 거센 역풍을 맞고 있다.
◆ 멕시코 장벽부터 브렉시트, 방글라데시 테러까지…확산되는 외국인 혐오
그러나 올해 7월 공화당의 사실상 대선후보는 고립주의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다. 그는 멕시코 장벽뿐만 아니라, 테러방지를 위해 무슬림의 미국 입국 전면금지를 주장하기도 했다. 이슬람 국가는 물론 유럽 등 외국에서 수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트럼프의 공약은 지지를 받았다. 미국 내 외국인·외부인에 대한 혐오가 뿌리깊다는 반증이었다.
유럽도 마찬가지다. 당초 영국의 브렉시트 찬성안 통과에는 반이민 정서는 큰 역할을 했다고 BBC 등 현지언론들은 분석했다. 최근 영국에서는 극단적인 외국인 혐오범죄가 만연하면서 반작용으로 이민자 혐오에 반대한다는 표시인 '옷핀달기' 운동이 퍼지기도 했다.
다른 나라도 상황이 대동소이하다. 난민 포용정책을 펼쳤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기독민주당(CDU)을 비롯한 연정 세력들은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다. 반면 반이민을 주장하는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올해 3월 지방선거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제3 당으로 부상했다.
브렉시트는 프랑스의 극우정당인 국민전선(FN)에도 정치적 호재가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밖에도 덴마크, 네덜란드, 벨기에, 헝가리 등 유럽 각국에서는 반이민·난민을 등에 업고 외국인에 대한 혐오정서가 더욱 커지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들은 분석했다.
이같은 혐오는 서구에만 만연한 것은 아니다. 지난 1일 발생한 방글라데시의 다카 테러는 전형적인 외국인 혐오 테러다. 사건 현장에서 살아남은 피해자의 증언에 따르면 범인들은 "우리는 외국인만 죽인다"고 말했다고 뉴욕타임스가 2일 보도했다. 이슬람 원리주의자인 이들은 외국인들이 들어와 방글라데시 무슬림들을 정신적·물질적 측면에서 오염시키고 있다고 보고있다고 NYT는 전했다. 방글라데시뿐만 아니라 지난해 발생한 파리 테러 역시 '서구에 대한 증오심'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IS가 세우고자 하는 칼리프 제국을 세우기 위해서는 장애물이 되는 이들은 모두 사살해도 된다는 '극단의 고립주의'를 내세우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 자국 내 소비·고용이 먼저…거세지는 경제 고립주의
정치뿐만이 아니라 경제적 고립주의도 강해지고 있다. 영국의 브렉시트를 지지한 이들 대부분은 중소기업들이었다. 이들은 EU의 규제에서 벗어나 관세를 올리면 국내 경제에서 우위에 설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일부 영국민들 또한 고립주의를 택할 경우 이민자들은 아닌 자신들의 일자리가 많아질 것으로 보고있다.
중산층의 붕괴가 빨라지는 미국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한때 미국은 신자유주의의 선봉이었다. 기업의 이익을 위해서 국가간의 경계를 허물어 싼노동력으로 물건을 싸게 생산·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미국은 NAFTA(북미자유협정),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그리고 여러 국가와의 FTA 등에도 앞장섰다. IMF와 같은 국제금융기구를 등에 업은 신자유주의는 전세계를 잠식해갔다.
그랬던 미국마저 이제 노선을 달리하고 있다. 오는 11월 대선서 재집권이 유력한 민주당은 1일 '보호무역주의' 색채를 띤 대선정책기조 초안을 내놓았다.
이날 민주당은“지난 30여 년간 미국은 당초 기대에 미달하는 너무 많은 무역협정을 맺었다”면서 “이들은 대기업 이익을 증진시킬 뿐 노동자의 권리와 노동기준, 환경, 공공보건을 보호하는 데는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또 “이제는 이런 과도한 자유화를 중단하고 미국 일자리 창출을 지지하는 무역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여러해 전에 맺은 무역협정들을 재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세계 1위 경제국의 이같은 입장변화는 앞으로 세계 각국의 경제지형을 바꿀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기대하고 있다. 본격적으로 보호무역주의가 득세할 경우 각국 간의 무역분쟁도 불가피해질 것으로 외신들은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