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김창익 기자 = 기내식엔 ‘비프 or(또는) 치킨’만 있는 게 아니었다. 메뉴는 양고기와 돼지고기를 비롯해 총 35가지나 됐다. 하지만 비행기가 착륙할 때까지 아무도 그 사실을 몰랐다. 기장은 사실을 승객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경우의 수가 많아지면 기내가 혼란스러워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비프는 밀양산이고 치킨은 가덕도산이었다.
김해산 양고기도 있었는데 기내 서비스가 되는 줄 승객들은 몰랐다. 지난 21일 정부의 영남권 신공항 발표 얘기다. 언론은 국토부의 발표 전까지 ‘밀양 or 가덕도’ 두 가지 메뉴에만 집중했다. 모든 기사는 양자택일과 관련된 문제였다. 결과는 ‘김해공항 확장’이란 제3의 메뉴였다. 언론은 당황했다. 소고기와 닭고기만 놓고 취재를 했던 기자실은 양고기란 발표에 술렁였다.
언론이 무지한 탓일까? 그 관계자는 “용역사가 지자체들과 의견을 나누는 자리에서 김해공항 확장 등 제3의 안이 가능하다는 언급이 나왔었다”고도 했다. 용역 자체가 최적의 입지를 선정하는 작업이었고, 용역 작업 과정 중 정부는 제3의 가능성을 인지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제3의 메뉴에 대해 언급이 됐을 경우 빚어질 혼란을 막기 위해 그에 대해 함구했다는 게 국토부의 설명이다.
돌이켜 보면 정부가 제3의 대안에 대한 가능성을 배제한 적은 없다. 엄밀히 말하면 소고기와 닭고기를 도마에 올리고 난도질을 하고 양념을 친 건 순전히 언론이었다.
하지만 간담회 자리에서 질의응답에 임한 국토부 고위관료들의 응답으로 판단해보면 제3의 메뉴에 놀란 건 언론 뿐만은 아닌 것 같다. 국토부는 김해공항 확장에 대한 자료를 부랴부랴 만들었다.
이번 발표를 접하고 또 하나 드는 생각은 왜 과거 연구용역 결과에선 김해공항 확장이란 대안이 묵살됐나 하는 점이다. 과거 국토연구원 용역에서 연구원은 김해공항 확장과 관련된 네 가지 대안을 제시했지만 모두 채택되지 못했다. 기본적으로는 이착륙에 걸림돌이 되는 북쪽 돗대산에 대한 해결책이 마땅치 않아서다.
프랑스 용역사가 제시한 해결책은 기존 활주로에서 40도 틀어진 방향으로, 즉 'V'자로 활주로를 신설하는 방안이다. 신설될 활주로 부지가 정부의 다른 개발계획에 포함돼 있어 부지확보도 쉽다는 게 국토부의 설명이다.
프랑스 연구진이 생각해낸 방안을 왜 국내 연구진은 생각하지 못했을까? 국토부 고위 관계자는 이를 '콜럼부스의 달걀'에 비유했다. 알고나면 별 게 아닌 데 달걀을 깨기 전까지는 미궁의 영역이었다는 얘기다.
이착륙에 방해가 되는 산을 피해 활주로를 40도 틀어서 설치하는 게 콜럼부스의 달걀에 비견될 정도라면 이는 더 큰 문제다.
복잡한 여러 가지 요인들을 단순화해 발표를 했겠지만 V자 활주로 신설 정도는 비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도 나올 수 있는 아이디어로 보인다. 관련 사안에 전문가인 박사급 연구진들이 오랜 기간 숙고한 뒤에도 이런 안이 나오지 못했다면 그 자체가 국토부의 외부 용역 시스템을 손질할 필요가 있다는 증거다. 이번 용역을 했던 프랑스 연구진에게 콜럼부스 달걀 얘기를 꺼내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