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최신형 기자 =영남권 신공항 유치를 둘러싼 지역 갈등은 여의도 정치권에 적잖은 과제를 남겼다. 20년 넘게 지속된 대규모 국책사업 갈등의 본질은 외면한 채 대구·경북(TK)과 부산·경남(PK)의 갈등이나 특정 정파의 분열 등 지엽적인 문제에 골몰한다면, 제2의 신공항 유치 갈등이 재연될 수밖에 없다.
신공항 건설과 같은 10조원을 웃도는 대규모 국책 사업은 정치권에는 ‘표’, 지역주민에게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통한다. 이는 선거에서 표만 의식한 정치인의 ‘묻지마식 뻥튀기’ 공약과 토건 사업을 원하는 지역주민의 ‘핌피현상’(PIMFY Syndrome·수익성 있는 사업을 내 지역에 유치하겠다는 지역이기주의)이 맞물린 한국 사회의 민낯이다.
◆정권 따라 국책사업 경제성 ‘오락가락’
22일 여야와 전문가들에 따르면 신공항 후유증이 남긴 과제에는 △예비타당성(예타) 조사의 공정성 확보 △독립적인 국책사업추진위원회의 상설화 추진 △공유가치를 기반으로 하는 자본주의 5.0 가치 실현 등 크게 세 가지다.
김해 신공항 확장의 절차는 ‘국토교통부의 사업계획서 제출→기획재정부 올해 하반기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예타 의뢰→내년 공항개발 기본계획 수립→오는 2021년 착공→2026년 개항’ 등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결정된 김해 신공항 건설이 최소한 차기 정권에서 착공해 차차기 정권의 후반기 때 문을 여는 셈이다.
논란 지점은 KDI 예타 결과다. 비용 대 편익(B/C) 비율인 예타는 1 이상이면 경제성이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정부가 정치권과 관계없는 제3의 기관인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의 용역 결과대로 사업을 추진한 만큼, 예타 결과가 ‘경제성 있음’으로 판명 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같은 사업의 예타 결과가 정권에 따라 롤러코스터를 탄다는 점이다. 이명박(MB) 정부는 집권 4년차 때인 2011년 3월 말 동남권(당시 공식 명칭) 신공항을 전면 백지화했다. 국토연구원의 2차 용역 결과(밀양 0.73·가덕도 0.7),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갈등 피한 정부, 국책사업위 구성 필요
5년 후 새로운 수요 발생과 조사방법 선택 등 변수가 많지만, 예타 결과가 ‘정권의 입맛에 휘둘린다’는 의혹만은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차재원 부산 가톨릭대학교 교수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경인운하 사업을 거론하며 “같은 사업의 예타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다른 결과를 도출하는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환경단체 등에 따르면 경인운하의 2002년 8월 KDI의 1차 연구 결과는 0.8166이었다. 건설교통부가 재수정을 요구하자, 같은 해 10월에는 0.9206~0.9945, 이듬해 2월 0.92~1.28 구간에 있는 8가지 시나리오를 공개했다. 이 과정에서 환경단체 등은 정부의 수치 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선 1.07로 ‘경제성 있음’으로 판명 났다. 야권 일부 의원은 예타의 독립성 확보를 위한 법 개정에 착수했다.
일각에선 정부와 정치권, 시민사회단체가 독립적인 국책사업추진위원회의 상설화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창민 정의당 대변인은 “검증되지 않은 개발 공약을 정치 논리로 추진할 수 없도록 국책사업추진 기준 마련과 독립적이고 상설화된 국책사업위원회 설치 등 시스템 개혁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밖에 국책사업 건립 때 경쟁지와 이익을 공유하는 ‘자본주의 5.0’의 가치를 국책 사업에 적용하는 것도 한 방법으로 거론된다. 이른바 ‘이익과 공유’의 쉐어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