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국은 자동차와 전자·반도체·IT, 철강, 조선, 석유화학 등 주력사업 대부분이 중복된다. 전 업종이 공급 과잉인 상태에서 한국만 구조조정을 이뤄낼 경우 중국과 일본의 남아도는 생산품이 한국으로 유입돼 시장을 더 교란시킬 수 있다.
철강 산업이 대표적인 사례다. 배추보다 더 싼 중국산 철강재가 대거 수입되면서 포스코와 현대제철, 동국제강 등 국내 철강사들이 모두 피해를 입고 있다.
물론 수요산업의 입장에서는 한 푼이라도 더 저렴한 가격의 제품을 구매하고 싶은게 사실이다. 하지만 수준 이하의 초저가 제품이라는 게 문제다. 중국의 중앙 및 지방 정부의 보이지 않는 지원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취재진들에게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 가격으로 제품을 만들 수 없다. (중국 정부의 보조금 지급이) 의심은 하고 있지만 증거를 잡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을 정도다.
일본은 정부의 관리 하에 철강업계와 수요업계가 손을 잡고 수입산 철강제품의 유입을 봉쇄하고 있다. 법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외국업체의 일본내 시장 진출을 막는 비관세 장벽은 기업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이에 산업계는 한·중·일 정상회담을 통해 3국간 정례 모임을 만들어 산업 구조조정을 공동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3국 산업 모두 생산시설이 글로벌 규모로 짜여져 있어 함께 진행하는 것이 좋다"며 "이를 통해 각 국가별로 업종의 특성을 살린다면 시너지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다만 쉽지는 않을 것이다. 어찌됐건 희생이 따라야 하고, 더 나아가 기업들의 자율성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며 "그래도 대화를 지속해 나가면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산업계는 제3차 구조조정의 주체가 기업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본지가 인터뷰를 한 재계 고위 관계자들이 전하는 공통된 지적은 “기업 구조조정에 기업이 없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금융 부문에 의존하면서 기업의 의견이 묵살되고 마치 모든 기업들이 죄인 취급을 받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최근 구조조정 대상 업종에 속한 일부 기업들은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데도 금융기관들로부터 대출금을 조기 상환하라는 요구를 받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한 조선업체 관계자는 “올 들어 건조한 선박을 일정에 맞춰 인도해 선주들로부터 대금을 받았다. 인도후 수주금액의 대부분을 받는 헤비테일 방식이기 때문에 채권단으로부터 추가 지원을 받지 않아도 되는 상태까지 왔다. 지원받은 금액도 계획대로 상환하고 있다”고 현 상황을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그런데 마치 우리 회사도 다른 기업들처럼 곧 망할 것이라고 저주에 가까운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다. 자금사정을 잘 안다는 채권단도 분위기에 편승해 자금 회수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면서 “아플 때 때리면 더 아픈 법이다. 반드시 치료해 주겠다는 정성으로 어루만져 주면 좋을 텐데, 때리면서 약을 주니 상처가 쉽게 낫겠느냐”며 볼멘 소리를 쏟아냈다.
정부와 채권단이 강하게 압박하고 있지만 기업들의 움직임은 그렇지 못하다. 대놓고 드러내지 않지만 기업들은 정부를 충분히 믿지 못하는 분위기다.
4대 그룹 고위 관계자는 “구조조정 대상에 속한 기업은 자체적인 자구안을 실행하고 있고, 이러한 내용을 채권단에 전달했다”면서 “정부와 채권단이 오너의 사재 출연을 포함해 계열사 지원 등 성의를 보이라고 요구하고 있으나 무리했다간 건실한 계열사마저 동반 위기에 빠질 수 있는 데다가 주주들의 반대도 무시할 수 없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일부 기업들을 제외하면 지금부터 자구안을 충실히 이행하면 생존할 가능성이 높다. 정부와 채권단은 ‘어떻게 지원해줄까’를 고민하고 기업들의 의견을 들어줬으면 한다. 기업의 사정을 가장 잘 아는 당사자는 기업인들이기 때문이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