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위 법제, 2위 정책, 3위 관시
G2시대, 특히 성역없는 부패척결에 대한 의지를 행동으로 보이고 있는 시진핑(習近平) 시대 중국에서 가장 중시하고 주력해야 할 역점사항의 우선순위는 1위 법제, 2위 국가정책, 3위 관시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중국을 법치사회는 거리가 먼, 인치와 관시가 지배하는 사회주의국가로 알고 있으나 이는 오래된 잔상이거나 위험한 착각이다.
[강효백 교수의 차이나 아카데미] 시진핑 시대에 관시로 사업하면 망한다(1)
중국사업에서 법제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관시가 아니라 국가정책이다. 왜냐하면 중국에서 국가정책은 불문법의 일종이다. 관습법과 조리를 불문법으로 삼고 있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중국은 법률의 규정이 없는 경우 국가정책을 준수하여야 한다”고 ‘민법통칙’에서 규정하고 있다.
돈도 배경도 없고, 인맥도 관시도 없고, 젊음도 미모도 없고, 심지어 남편도 애인도 없는, 36세의 과부 둥밍주(董明珠)가 말단 여공으로 출발하여 세계 최대 에어컨 회사 거리그룹의 총수가 될 수 있었던 성공 제1비결은 “관시로 사업을 해서는 절대 안 된다”다.
그는 관시를 철저히 배제하고 법과 국가정책에 따라 자신과 회사를 관리하고 경영했다. 즉, 둥밍주가 오늘날 중국의 대표적 여성기업가가 된 최대 비결은 관시 대신 법제와 국가정책을 누구보다 면밀히 파악, 준수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자신과 회사의 경쟁력 강화와 경영 전략 전술 핵무기로서의 효용성을 극대화 시키면서 능란하게 운용했기 때문이다.
◇베스트 황제와 워스트 황제
중국 역사상 모두 245명의 황제가 군림했다. 사람들은 그중에서 최고의 명군은 당태종(唐太宗) 이세민(李世民, 599~649)을, 최악의 폭군은 수양제(隋煬帝) 양광(楊廣, 569~618)을 꼽는다.
당태종은 평소 '백성은 물이고 군주는 배'라고 말했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뒤엎기도 한다. 배를 무사히 저어 가고 싶다면 항상 물을 신경 써야 한다는 것이다. 백성을 섬기는 위민정신이 배어 나오는 현군의 어록이다.
하지만 그가 베스트 황제로 숭앙받는 진짜 이유는 민본주의 치국이상을 현란한 언사로만 표현한 데 그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제도화해 실천한 데 있다. 당태종은 갖은 악법을 폐지하고 3성6부제, 주현제, 과거제 정비와 함께 조세·군역의 감면 등 민생을 위한 좋은 법제를 많이 창제했다.
특히 그의 재위시절에 확립된 당률(唐律)은 후대황조들의 기틀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한국과 일본 등 동양사회의 제도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수양제는 즉위하자마자 대대적인 토목건설을 일으켰다. 그는 연인원 1억5000만 명의 백성을 동원하여 만리장성을 새로이 쌓게 했으며, 아버지 수문제(隋文帝) 양견(楊堅, 514~604)이 중단시킨 대운하공사를 재개시켰다. 황제 전용의 거대한 용주(龍舟)를 대운하 양안에서 8만여 명의 백성들이 밧줄로 끌고 다니게 하는 패악을 저질렀다. 그는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정치경제적 기반을 자기과시용 토목공사와 대외원정에 탕진해버려 결국 부하에게 교살당하고 수나라도 단명하고 말았다.
수양제 양광의 무덤은 약 1400년 동안 장쩌민 전 주석의 고향인 양저우 교외 후미진 숲 속에 ‘양광지묘’(楊廣之墓)라 쓰인 초라한 빗돌 하나를 앞세우고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능이 아닌 묘로 불렸던 유일한 황제의 무덤이라는 사실에서 그의 악정에 후세가 얼마나 몸서리를 쳐 왔는지 알 듯하다.
중국 최고와 최악 황제 둘 다 ‘건설’에 힘썼으나 최고명군은 ‘제도건설’에, 최악폭군은 ‘토목건설’에 몰두했다. 둘 다 ‘배’와 ‘물’의 키워드로 함축되지만 당태종호(號)는 물(민심)을 항상 보살펴 중국사의 바다에 빛나는 항해를 했고, 수양제호는 물을 업신여겨 분노한 민심의 파도에 침몰하고 말았다.
현재 중국은 당태종 치세 시 영광의 재현을 위해 경제건설 제일주의에서 제도건설, 즉 법과 제도에 의한 의법치국(依法治國)의 국가에로의 전환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과거 최고지도층이 이공계 출신 일색이었던 것과는 달리, 현 중국 최고수뇌부는 시진핑 주석, 리커창 총리, 리위안차오(李源潮) 부주석, 류옌둥(劉延東) 부총리 등 모두 법학도· 법학박사라는 메가트렌드의 변화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