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효백 교수의 차이나 아카데미] 시진핑 시대에 관시로 사업하면 망한다(1)

2016-05-12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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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효백 경희대학교 중국법학과 교수

[강효백 경희대학교 중국법학과 교수]



◇중국에 대한 오해 3대 키워드 : ‘사회주의’ ‘관시’ ‘아직’

“기억하라, 관시(關係)를 믿지 말라” <알리바바 마윈(馬雲) 총재>
“관시로 사업을 해서는 절대 안 된다. 물이 맑아야 물고기가 산다.” -<중국대표 여성기업가 동밍주(董明珠)> 

중국에 대한 인식의 오류를 범하게 하는 키워드를 세 개만 든다면 ‘사회주의’, ‘관시’, ‘아직’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오래가는 중국의 잔상(殘像)과 그 잔상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중국의 실상을 단 한 줄로 축약하자면 이렇다.

잔상: 중국은 ‘사회주의’국가로서 사업에는 ‘관시가 중요하고 ‘아직’ 우리보다 뒤졌다.

실상: 중국은 ‘자본주의 개발독재국’으로서 사업에는 ‘법제’가 중요하며 ‘이미’ 우리보다 앞섰다.

이 대목에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심지어 일종의 거부감을 느끼는 독자들도 없지 않을 것이다. 이에 나는 몇 마디 반문하고자 한다.

중국이 아직도 평균과 배분을 중시하는 ‘사회주의’국가로서 사업에는 ‘관시’가 제일 중요하다면 어떻게 미국과 함께 세계 주요 2개국(G2)로 군림할 수 있겠는가.

8만 명의 억만장자(부동산 제외 개인자산 190억원 이상)와 121만 명의 천만장자가 어떻게 나올 수 있겠는가.

중국이 원대하면서 정교한 법률과 법령, 제도의 인프라 없이 공산당 일당독재의 인치와 관시로 움직여왔다면 어떻게 대외무역액, 외자유치액, 외환보유고, 에너지생산력, 구매력기준GDP 세계 1위라는 5관왕을 차지할 수 있었으며, 어떻게 글로벌 500대 기업 가운데 106개가 중국기업임을 설명할 수 있겠는가.

조그만 구멍가게도 살아남기 위해서 나름의 시스템과 룰을 세워 운영하는데 하물며 13억6000만명 인구의 거대한 중국의 정부와 기업이 법제보다 관시를 중시해왔다고? 그게 가능한 일인가? 만일 정말 그러하다면 오늘날처럼 부강한 중국은커녕 역사의 뒤안길로 이미 사라져버렸거나 동북아의 이슬람국가(IS)나 다름없는 북한 꼴이 났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어떠신지, 강호제현의 고견은?

◇관시는 ‘빽’도 ‘릴레이션십’도 아니다
 

[자료=강효백, 『중국인의 상술』, 한길사, 2002, 214쪽. ]


이왕 말이 나왔으니 ‘관시’에 대해 한마디 더 하고자 한다. 적잖은 우리 기업들은 아직도 중국이 관시를 절대시하는 나라라고 지레짐작하고, 인맥형성에만 주력하면서 공식화된 투자환경인 중국의 법률과 법규, 정책의 파악에는 소홀히 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의 오류와 잘못된 태도는 중국진출실패의 근본요인이 되어왔다.

‘관시란 무엇인가?’ 관시의 개념부터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 관시는 한자 그대로 관계(關係)다. 하지만 관시와 관계, 이 둘의 뜻과 쓰임새, 사회적 메커니즘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관시는 우리말 가운데 문화적인 뜻을 함축하는 ‘인맥’에 더욱 가깝다. 영어의 ‘릴레이션십’(relationship)은 영미식 개인주의가 물씬 풍기는 단어로 ‘관시’와는 다른 의미이다.

관시가 인맥이나 릴레이션십과 비교하여 가장 다른 점은 의무의 특성을 지닌다는 점이다. 일단 관시가 형성되면 상대방은 언제든 무엇인가를 기대할 수 있다. 상대방이 자신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다는 공통인식이 형성된다. 만일 관시가 이루어졌다는 생각에서 누군가가 무엇인가를 요구했을 때 이를 거절한다면 상대방은 관시가 파괴되었다고 여긴다. 의무보다는 도의적 성격을 강조하는 ‘인맥’이나 그런 것이 아예 없는 ‘릴레이션십’은 이런 점에서 다르다.

연못에 돈을 던지면 원을 그리며 퍼지는 동심원처럼 쉽게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된다는 것도 관시의 특징 중 하나다. 관시는 상호 간의 통로나 연결이라는 포괄적 의미로 개인과 개인, 회사와 회사 등의 관계로 해석되기 때문에 단순히 뇌물 같은 의미가 아닌 서로 신뢰하고 믿을 수 있는 관계의 의미가 강하다. 미래지향적인 성격을 갖는다.

또한 중국의 관시는 우리나라의 ‘빽’과도 차이가 있다. 우리의 ‘빽’은 높은 사람의 권력을 통하여 아래로 내려오는 형태인 반면에 관시는 실무담당자를 통한 직접 해결방식이 주류를 이룬다. 중국에서는 한국식의 ‘빽’은 잘 통하질 않는다. 고위층에게 가라오케에서 술을 몇 번 사고 뇌물(또는 선물)을 주었다고 해서 관시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국에서 한국식의 빽을 쓰다가 호되게 망신만 당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관시는 주로 개인 대 개인 사이에 형성되지만 조직 대 조직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한 조직이 다른 조직에게 큰 도움과 신뢰를 주며 관시를 구축하면 그 조직은 대부분 반대급부를 얻을 수 있다.

◇실세는 ‘부(副)’자가 달린 자?

한국의 빽과 달리 중국에서 좋은 관시를 맺는 데 주력해야 할 대상은 간혹 회장이나 사장 등 직함상 최상급자가 아니라 '부(副)자'가 달린 자나 현장실무자인 경우가 있다. 참고로, 실세 최고권력자 덩샤오핑의 최고직위도 부총리였다. 공조직·사조직 막론하고 중국의 거의 모든 조직은 1인 단독결정제가 아니라 복수의 집단이 결정하는 집단지도체제라는 사실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한마디로 어떤 조직의 특정 1인에게만 잘해준다고 해서 바람직한 관시를 맺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외국인으로서 사업이나 개인적인 일을 볼 때 관시의 위력을 절실하게 실감할 수 있다. 관시를 오랫동안 유지하면 ‘라오펑유(老朋友, 오랜 친구)'의 단계에 이를 수가 있는데 이 정도면 관시의 구축은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라오펑유는 관시의 꽃 한가운데 꽃술과도 같다. 라오펑유는 오랜 친구라는 일반적인 개념을 뛰어넘는 그야말로 생사고락을 같이한 전우애 이상의 믿을 수 있는 친구다. 어려울 때 서로 돕고 고충을 나눌 수 있는 친구인 것이다. 라오펑유의 꽃술 주변에는 또 다른 라오펑유가 있기에 서로서로 아름다운 힘을 사방으로 뻗친다.

그런데 아직도 중국에 진출한 많은 기업들이 관시 없인 중국 진출이 힘들다고 한다. 얼마 전 한국의 법원에서도 중국의 관시를 기업의 경영수단으로 인정한 판결이 나왔다. 한국에서 출판된 중국법률 관련서적도 중국에서는 법제보다 관시가 더 중요하다는, 참으로 한심한 쌍팔년도식(단기4288년, 서기1955년)구절이 적혀 있다. 아직도 중국 사업에서 관시가 절대적으로 중요할까, 과연 그럴까?

답은 과거엔 그러했지만 현재에는 그렇지 않다. 관시는 적어도 20세기 말 개혁개방 초기 중국에서 사업을 잘하는 것은 관시를 어떻게 만들어가고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21세기 오늘 중국에서 관시는 법제와 국가정책 다음으로 밀려났다. 더 이상 관시는 절대적인 위상을 자랑하지 않는다. 대신 상대적인 중요성만 지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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