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양성모 기자 = “재력가의 손자거나 권력자의 손자 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조홍제의 손자가 되기는 쉽지 않습니다.”
효성그룹을 일궈낸 만우 조홍제 창업주에 대한 손자 조현준 효성그룹 사장의 말이다. 1906년 5월 20일 경남 함안군에서 태어난 만우는 올해로 탄생 110주년을 맞는다.
조현준과 조현상 형제가 효성그룹 경영일선에 뛰어든 뒤 기업은 안정적인 성장세를 이어오고 있다. 이같은 배경은 만우 조홍제 회장 일화집 ‘늦되고 어리석을지라도’에 잘 나타나 있다.
조 사장을 비롯해 만우의 손자 손녀들은 학교에서 하찮은 쪽지시험을 보더라도 점수가 좋으면 그 걸 갖고 할아버지에게 달려갔다. 자신들이 공부를 잘 한다는 것을 무엇보다 기뻐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 사장은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몇 달 전 병세가 악화돼 하루종일 누워 있어야만 했다. 특히 신장기능 저하로 투석기에 의존했던 할아버지는 병석에서의 고통에도 불구, 손자들의 100점짜리 시험지를 들고 오면 어린애처럼 좋아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할아버지가 정말 좋아하시니까 그래서 더 노력해 100점 맞을 시험지를 보여드리려고 했던 것 같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만우는 손자들의 좋은 성적표를 들고 오면 두둑한 용돈을 주곤 했다. 성적이 떨어진 시험지를 들고 와도 변함없이 용돈을 쥐어주곤 했다. 그러면서 손자들에게 늘 이렇게 물었다. “노력하는 사람은 못 당한다. 자기 능력을 믿고 까부는 사람하고 모자라는 능력을 묵묵히 노력으로 메꾸는 사람하고 경쟁하면 누가 이길 것 같냐”고 말이다.
“머리 좋은 사람이 노력하는 사람을 절대 못 당한다”며 손자들을 야단 칠때도 결과가 나쁜 경우가 아니라 노력이 부족하다 느끼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조 사장은 기억했다.
조 사장은 할아버지와의 일화 중 하나로 언어공부에 대한 기억을 꺼네놓았다. 그는 “할아버지는 네 아버지가 일본어와 영어를 잘하니 너는 그보다 하나 더 잘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며 “당신은 편안히 지내면서 우리에게만 이렇게 해라 하면 말이 먹히지 않다는 것을 잘 알기에 할아버지 자신도 한시도 쉼없이 책을 보거나 연구에 몰입하는 등 자기발전을 위해 노력하셨다”고 말했다.
현재 조 사장은 영어와 일본어, 이탈리아어까지 3개국어에 능통하다. 결국 아버지인 조석래 회장보다 한 가지를 더 잘하게 된 셈이다.
조 사장은 “할아버지는 인간적으로서도 기업가로서도 절대 뛰어넘기 어려운 존재셨다”면서 “나는 할아버지께 부끄럽지 않은 손자가 되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할아버지가 ‘역시 내 손자답구나’ 하고 말씀하실 수 있는 손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