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마다 돌아오는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역세권 개발과 재개발·재건축, 경전철 사업 등 민원 해소성 개발 공약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20대 총선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개개인이 헌법 기관인 국회의원이 선거 때 지역 개발 공약을 내놓는 것이 정당한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지역 개발은 행정권에 속하는데도 국회의원 후보자들이 지역 유권자 표심을 공략하기 위해 권한 밖의 개발 공약을 남발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9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에 따르면, 20대 총선에서 전국 253개 선거구 후보 707명의 공약을 분석한 결과 409명(58%)이 신공항 건설과 경전철·철도·도로 신설 사업 등 개발 공약을 제시했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실천본부)는 지난 총선 후보자 가운데 419명(44.8%)이 제시한 지역 공약 이행 예산이 1017조 원에 달하며, 이는 올해 정부 예산(386조 4000억 원)의 2.5배가 넘는 액수라고 지적했다.
이 가운데는 조(兆) 단위 대형 건설사업이 줄줄이 포함돼 있다. 진영 더불어민주당 당선인(용산)은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사업 추진 △신안산선 만리재역 신설 추진 △후암 특별계획구역 재개발 및 건축 조속 추진 등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민경욱 새누리당 당선인(인천 연수을) 역시 총 사업비가 4조 6038억 원에 달하는 'GTX(수도권 광역급행철도) B노선 연내 추진'을 핵심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했다.
개별 후보뿐 아니라 정당 지도자들도 지역 숙원 사업 해결을 내세워 '표 구걸'을 서슴지 않는다.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는 지난달 8일 부천 원미을 선거구를 찾아 "좋은 학교가 많이 생겨야 애가 크면 떠나가는 부천이 되지 않는다"며 교육부 소관인 특목고 유치 카드를 꺼내들었다.
'개발'은 정부조직법이나 도시재개발법 등에서 규정한 행정부 권한이며 국회법에서는 지역 개발 관련 권한을 국회의원에게 부여하고 있지 않다(제 18대 국회의원 총선거 서울지역 당선자 지역개발 공약의 적정성 분석, 장용호, 인하대학교 교육대학원, 2009). 지역 개발 주체는 도지사와 시장 등 지방자치단체장이다. 대신 헌법상 국회는 입법권(제40조)과 예산 심의권(54조), 국정감사권(61조)을 갖는다.
국회의원 후보자가 지역 개발을 공약하는 것은 월권 소지가 있으며 지방자치 의미를 퇴색시키는 행위인 셈이다. 지역 사업은 국회의원 권한 밖의 일인 탓에 사업 추진 과정에서 국회의원은 예산을 끌어오거나 행정부를 상대로 지역구 현안을 해결하는 '로비스트' 역할에 그칠 수밖에 없다.
◆ 국토 발전 균형·국가 자산 건전성 훼손…부작용도 커
이러한 '월권'은 본분과 충돌하기도 한다. 선거 과정에선 지역 개발에 매몰돼 각 계층을 대변하는 공공 정책 이슈나 관심 입법, 의정 활동 계획 등은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게 된다.
또 마구잡이식 지역 공약은 국가 균형 발전과 지방 재정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며 '쪽지예산'과 재정 추계 없는 '묻지마'식 입법 발의 관행의 주범이기도 하다.
특목고·자사고 유치 공약, 산단 조성이나 도로·철도 건설 공약은 '땅값·집값' 상승에 대한 유권자의 기대에 기댄 것으로 투기를 조장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광재 실천본부 사무총장은 "지역 개발 공약은 입법부를 뽑는 선거에 전혀 맞지 않고 국회의원 권한과도 상관이 없다"며 "그러나 현실적으로 지방자치 권한 위임이 제대로 안 돼 국회의원이 지역 민원을 받아 (지자체에) 협조할 여지가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국회의원이 지역구를 기반으로 선출된다는 점에서 지역 개발 공약의 불가피성을 주장하는 반론도 제기된다. 윤종빈 명지대 교수는 "지역에 필요한 중요한 사업에 대해 국회의원이 목소리를 내 중앙에 전달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했고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국회가 입법 기관이지만 국가 중요 정책의 결정과 관련해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천본부는 공직선거법 제66조를 개정해 지역 개발 공약을 하더라도 입법 계획과 예산표 제시를 의무화하는 '중재안'을 제시하고 있다. 근본적인 제도 개선책으로는 중·대선거구제로 개편, 지방자치 강화, 양원제 도입 등이 학계에서 논의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