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스페셜]시골도시 푸톈, 중국 의료계 장악사

2016-05-0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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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톈시 출신 6만명 의료인들이 중국내 8000곳 민영병원 운영, 전체 80%

과도한 양적팽창 추구하다 사기진료 과대광고 군부결탁 등 곪아터져



아주경제 베이징특파원 조용성 기자 = 중국 푸졘(福建)성 푸톈(莆田)시의 작은 농촌마을인 둥좡진(東莊鎮)의 천더량(陳德良, 1951년생)은 1980년대 초 스스로 피부병의 일종인 옴의 치료제를 개발했다. 비위생적인 환경과 습도가 높은 기후, 그리고 열악한 의료시설 탓에 당시 마을에는 옴 환자가 많았다. 천더량은 자신의 치료제를 마을 환자들에게 처방했고, 약효는 탁월했다. 마을에는 이내 소문이 퍼졌고, 인근 마을에서도 환자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자신감을 얻은 그는 건선, 습진 등 피부질환 치료제도 의학서를 보고 스스로 개발했다. 푸톈시 시내에서도 환자들이 그를 찾아왔다. 그리고 그는 봇물치는 환자들의 요구에, 시 중심가로 진출해 의료행위를 했다. 의대를 나오지도 않은 그였지만, 그는 당시 푸톈시에서 가장 신뢰받는 의사였다.

현재 중국 민영병원의 80%를 장악하고 있는 푸톈계(莆田系, 푸톈출신의 민간의료사업자 총칭)는 이렇게 천더량에 의해 출발했다. 당시 30대 초반의 천더량은 훗날 자신이 중국 전체 의료계를 쥐락펴락할 힘을 갖게될지 꿈에도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거대한 푸톈계를 만들어낸 천더량.[사진=바이두]



◆천더량과 8명의 제자

푸톈시 시내에 진출하면서 천더량은 8명의 둥좡진 출신 제자를 데려갔다. 천더량이 환자를 진료하고, 8명의 제자는 약을 처방하고, 돈을 받고, 손님을 유치하는 등의 일을 했다. 천더량의 사설의료원에는 환자들이 끊이지 않았고, 현금 역시 끊임없이 유입됐다. 당시 푸톈시는 다른 중국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의료시설이 턱없이 모자랐다. 문화대혁명 10년동안 의사들이 배출되지 못한 탓에 의사가 매우 귀했다. 그나마 남아있던 의사들은 외과, 내과 등 생명에 직결된 분야에 종사해야 했다. 피부과 의사의 그야말로 극소수에 불과했다. 이 같은 상황에 천더량은 상당한 명성을 얻게 된다.

8명 제자중 일부는 스스로 독립해 새로운 진료소를 차려나갔고, 제자들이 또다시 제자를 받으면서 푸톈시에는 민간 의사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천더량은 푸톈의 진료소를 제자에게 맡기고, 몇몇 제자들과 함께 푸젠성 타지로의 진출을 꾀했다. 타지에서 진료요청이 있기도 했지만, 피부병 환자들이 많은 곳으로 가서 돈을 벌려는 목적이 강했다.

천더량 일행은 다른 지역에 도착해 여관방 2개를 잡았다. 한 방에서는 천더량이 진료했고, 또 다른 방에서는 제자들이 처방한 약을 제조했다. 주요 진료질병은 피부병과 성병이었다. 제자들은 전봇대에 광고지를 붙이고, 전단지를 뿌리며 천더량을 홍보했다. 타지에서도 천더량은 대환영을 받았다. 푸젠성 각지를 돌며 순회진료를 한 천더량은 상당한 자금을 모을 수 있었다.

◆위탁운영으로 전국진출

이후 초창기 8명제자 중 한명인 잔궈퇀(詹國團)은 천더량에게 공립병원의 피부과를 위탁운영하자는 제안을 했다. 잔궈퇀은 천더량의 사촌동생이기도 하다. 천더량은 피부과 진료에 상당한 실력이 있었고, 종합병원의 피부과는 의사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천더량의 승인하에 잔궈퇀은 의료법인을 설립했고, 공립종합병원의 피부과를 위탁운영하기 시작했다. 환자들은 국영 종합병원의 신뢰도를 믿고 병원을 찾았지만, 실제 진료는 전문성이 떨어지는 푸톈시의 의사들이 보는 기형적인 구조였다. 하지만 공립병원, 푸톈계, 환자 등 모두가 만족스러워 했으며, 이 사업모델은 효과적이었다. 사업은 빠르게 확장되어갔다.

1990년대 초반 잔궈퇀은 법인 본사를 베이징에 설립하고, 베이징의 지명도 높은 병원들을 접촉해 피부과 위탁권을 얻어냈다. 막대한 돈을 벌던 잔궈퇀은 1998년 좌절을 맛보게 된다. 당시 한 활동가가 잔궈퇀 가족의 의료행위는 사기이며 불법행위라고 언론사에 실명제보했다. 그해 연말 국무원 위생부는 불법 순회진료를 금지했고, 2000년 위생부는 비영리 의료기구가 영리의료기구에 위탁을 주는 행위를 금지시켰다. 당시 푸톈계가 중국 각지에서 위탁받은 병원은 100곳이 넘었다. 위탁진료사업은 불법행위가 됐으며, 이에 잔궈퇀은 사업을 접고 싱가포르로 떠나버렸다.
 

중국은 여전히 의료시설과 전문의료진의 부족상황을 겪고 있다. [사진=신화통신]


◆민영병원 바람을 타고

이후 잔궈퇀은 유럽,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을 돌며 각지의 병원을 공부하며, 권토중래를 노렸다. 그리고 2003년 중국으로 돌아와 10억위안을 투자해 저장성 자싱(嘉興)시에서 신안(新安)국제병원을 설립했다. 천더량을 따라다니며 떠돌이 의료행위를 하던 그가 어엿한 대형 종합병원의 원장에 올라선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지속적으로 병원을 인수합병하거나 새로운 병원을 설립해 나갔다. 잔궈퇀은 과거 천더량의 제자들과 똘똘 뭉쳐서 세를 확장했고, 또 다른 제자들은 잔궈퇀의 사업모델을 응용해 스스로의 의료사업을 발전시켜나갔다.

과거 전봇대에 광고지를 덕지덕지 붙이던 이들은 일찌기 홍보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었다. 이들은 신문, 방송매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며, 인터넷 홍보에도 두각을 나타냈다. 특히 바이두의 검색광고를 주목하고, 바이두와 전면적인 합작을 했다. 예를 들어 중국인이 '성병'을 검색하면, 최상위 위치에 푸톈계의 병원들이 노출되도록 하는 식이다. 그리고 매년 바이두에 광고비를 지불했다. 모건스탠리 보고서에 따르면 바이두의 2014년 매출액에서 의료 광고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15~25%였으며, 이 중 푸톈계 병원 광고는 30~50%였다. 푸톈계가 지불한 광고액이 바이두 매출의 5~12%를 차지한 것.

◆푸톈계가 만든 8100곳 병원

천더량의 제자들은 그야말로 똘똘 뭉쳐 병원사업을 확장했다. 2014년 9월 중국 위생계획생육위원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중국내 민영병원은 1만1830곳이며, 이 중 푸톈계 병원은 무려 8100여곳이었다. 70%가 넘는 것이다. 전국적으로 푸톈 출신의 의사 6만명이 활동중이다. 병원사업에 일찍 눈을 떴고, 자본을 축적한 푸톈인들이 중국 민영병원을 장악한 셈이다.

현재 잔궈퇀 가족은 마리(瑪麗)병원, 마리야(瑪利亞)산부인과 등의 병원체인과 신안국제병원을 소유하고 있다. 또다른 제자인 린즈중(林志忠) 가족은 보아이(博爱)병원, 런아이(仁爱)병원, 수광(曙光)병원, 아포뤄(阿波羅)병원, 유이(友誼)병원, 셰허(協和)병원 등의 병원체인을 보유하고 있다. 또다른 제자인 천진수(陳金秀)는 화샤(華夏)병원, 화캉(華康)병원, 화둥(華東)병원을 운영하고 있으며, 황더펑(黄德峰) 일가는 톈룬(天倫)불임병원, 우저우(五洲)부녀소아병원, 메이롄천(美聯臣)의료미용병원 등을 보유하고 있다. 잔궈퇀, 린즈중, 천진수, 황더펑 등 4인은 모두 천더량의 제자로 '푸톈계 4대가족'으로 불린다. 이들 병원들은 높은 지명도를 지니고 있으며, 중국내 왠만한 지역에는 모두 설립돼 있다. 이 밖에도 수많은 푸톈 출신의 의사들이 민영병원을 경영하고 있다.
 

무장경찰 베이징 제2병원[사진=바이두]


◆양적팽창과 사기진료

양적으로 대성공을 거둔 푸톈계지만, 의료의 질적 수준은 양적팽창을 따라가지 못했다. 또한 규모를 앞세운 성공적인 마케팅은 의료수준 향상보다는 외형적인 화려함을 추구하게 만들었다. 이같은 구조하에서 웨이쩌시(魏則西·21)사건이 발생했고, 이로 인해 푸톈계는 현재 존망의 위기에 닥쳐있다.

희귀암인 활막육종에 걸린 웨이쩌시는 바이두검색을 통해 베이징 무장경찰 제2병원의 바이오치료센터를 알게됐고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치료법은 엉터리였고, 웨이쩌시는 끝내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무경 제2병원 바이오치료센터는 캉신(康新)이라는 업체가 위탁경영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공립병원의 위탁경영은 불법이지만, 군부산하의 병원에서는 암암리에 이뤄지고 있었다. 캉신 역시 푸톈 출신의 의료인이 설립한 의료법인이다.

◆군부패 연계되며 존폐위기

군부대 병원은 국무원 혹은 지방정부의 감독을 받지 않는다. 일반 국립 종합병원의 경우 위탁경영의 문제는 거의 없다. 하지만 인민해방군 후근부의 감독을 받는 군부내 병원에서는 위탁경영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중국군 역시 그동안 수차례에 걸쳐 산하 병원의 위탁 운영을 단속해왔지만, 군의 운영자금 부족과 부패로 인해 단속은 유명무실했다.

캉신에서 근무했다는 한 인사는 북경청년보에 “캉신에게 위탁을 준 군대 및 경찰 병원만 80개에 이른다”면서 “인민해방군 소속 병원장, 의무처 주임, 정치 주임 등에게 1인당 20만 위안씩(약 3500만원) 뇌물을 줬다”고 폭로했다. 또한 명절 때면 군부대 병원장들에게 개인당 40만 위안 상당의 선물을 제공한 것으로 전해졌다.

웨이쩌시 사건은 푸톈계 병원의 사기진료, 군부내 병원비리, 바이두의 검색광고 적법성논란 등으로 그 여파가 일파만파 번지고 있다. 특히 군부내 병원비리에 대해서는 인민해방군 주도의 강도높은 조사와 처벌이 예고돼 있다. 때문에 푸톈계 병원들 역시 큰 타격이 불가피하다. 앞으로 펼쳐질 중국 군부의 병원비리척결 수위, 그리고 푸톈계 병원들의 살아남기 위한 노력 등에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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