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문지훈 기자 = 조선·해운업 구조조정으로 시중은행들의 불만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수년 전부터 조선·해운업의 부진이 예견됐지만 정부가 선제적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가 뒷북을 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와 한국은행, 금융위원회 등 관계기관 협의체는 지난 4일 기업 구조조정을 위한 국책은행 자본확충 방식에 대해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협의체 관계자들은 구체적인 자본확충 방법을 상반기 내에 결정키로 했다.
실제로 국내의 한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이미 수년 전부터 조선·해운업 부진이 우려됐고 2013년께부터 중소 조선·해운사들이 쓰러지기 시작했다"며 "그런데도 금융위 등 정부 측은 아무런 대비책을 마련하지 않고 채권단의 지원만 강요했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STX조선해양이다. STX조선은 오랜 경영 부진 끝에 2013년부터 채권단의 공동관리를 받아왔다. 당시 채권단이 STX조선에 지원해야 할 자금은 1~2조원 수준이었다. 하지만 실사 과정에서 액수가 크게 증가해 총 4조원 이상 투입됐다. 이 과정에서 신한·우리·KEB하나 등의 시중은행들은 반대매수청구권을 행사, 채권단에서 탈퇴했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초창기부터 구조조정에 돌입했어야 하지만 금융당국의 압박으로 대다수 은행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자금을 지원했다"며 "결국 정부의 오판으로 구조조정 골든타임을 놓친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렇자 은행들은 조선·해운사 등의 부실채권에 대비해 추가 대손충당금을 대규모로 쌓아야할 처지에 놓였다.
하나금융투자에 따르면 △대우조선 △한진중공업 △현대상선 △한진해운 △창명해운 등 5개 기업에 대해 국내 은행들이 추가로 쌓아야할 충당금은 8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추가 충당금으로 인해 기업에 자금이 제대로 공급되지 못하는 신용경색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조선·해운업에 대한 구조조정 여파로 기업 여신 부실화 가능성이 커지자 은행들이 신규 대기업 대출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용환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은 최근 당분간 대기업 신규 대출을 취급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최대한 깐깐하게 리스크 관리를 해 부실채권으로 추락할 가능성이 있는 여신은 대출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KEB하나은행 역시 위험부담이 큰 대기업 여신 비중을 줄이기로 했고, 상대적으로 대기업 여신 비중이 낮은 KB국민은행도 꼼꼼하게 관리키로 했다.
하지만 정부와 금융당국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할 우려가 있는 신용경색에 대해 적극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시중은행들을 간접적으로 압박하고 나선 것이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최근 "경제 전반에 대한 무차별적 구조조정으로 오인되는 경우 은행들이 연쇄적인 기업 자금 회수에 나서게 되고, 멀쩡한 기업도 쓰러뜨리는 결과(흑자도산)를 야기할 수 있다"며 "구조조정 추진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금융기관이 어딘지 밝혀 뱅크런을 막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역시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신용경색 등 금융시장이 불안해지면 다양한 정책수단을 통해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