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열 칼럼] 헵번의 발뒤꿈치

2016-04-13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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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열(현대경제연구원 정책조사실장)

김동열(현대경제연구원 정책조사실장)


진도군을 상징하는 나무는 후박나무다. 특히 관매도의 후박나무 숲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정도로 높고 넓고 연중 푸르다. 진도에는 여수만큼이나 동백꽃이 많다. 후박과 동백으로 푸르게 덮힌 진도가 앞으론 노랗게 바뀔 것 같다. 은행나무 때문이다. 오드리 헵번 탓이다. 그의 아들과 손자들이 진도에 와서 ‘기억의 숲’을 꾸몄고 300그루가 넘는 은행나무를 심었다. 2년 전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세월호의 희생자들 304명, 그 속에 포함된 앳된 250명의 단원고 학생들을 기억하자는 취지의 은행나무 숲이다. 은행나무는 천년을 산다고 한다. 앞으로 100년 후, 1000년 후에도 노란 은행나무 숲이 진도의 가을을 온통 노랗게 물들이고 있는 꿈을 꾼다. 우리의 후손들이 매년 4월 16일이 되면 진도의 팽목항을 방문하고, 노란 은행나무 숲을 참배하고, 끊임없이 펼쳐진 노란 은행나무 숲을 걸어 다니는 꿈을 꾼다.

세월호 2주년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 무슨 변화가 있었나? 그 참담하고 치욕적인 대참사 이후에 우리 사회는 무슨 반성을 하고 무슨 개혁을 했는가? 우리는 붕어랑 비슷하다. 붕어는 기억력이 2초에 불과해서 미끼를 물다가 혼이 나고도 잠시 뒤에 또다시 그 미끼를 문다. 그래서 기억력이 모자란 친구를 가리켜 일본에서는 "붕어와 같다"면서 ‘니뵤마에’(2초前)라며 놀린다. 우리는 모두 ‘니뵤마에’처럼 잘 잊어버린다. 아무리 큰 사고라고 해도 대충 덮어버리고 금방 새로운 이슈로 넘어간다. 세월호가 꼭 그 꼴이다.
아직도 세월호의 침몰 원인에 관한 조사가 진행 중이다. 너무 엄중하고 엄밀하게 조사해서 그런 게 아니다. 시간을 끄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들의 기억이 흐릿해지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관행으로 행해져 오던 탈법이고 부실한 선사를 경영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면서 제2, 제3의 세월호 사태를 잉태하고 있다. 아직도 세월호는 물 밑에 가라앉아 있고, 아직도 인양 중이다. 우리 사회가 참으로 무섭다.

세월호 사태가 난 후 우리의 유람선은 안전수칙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서해안 연안의 크루즈 선에서는 여전히 술판이 벌어지고 신원 확인도 부실하다고 보도되고 있다. 선사, 공무원, 법과 규정도 변해야 하지만, 그 배에 타는 고객들의 안전의식과 행동 양태도 바뀌어야 한다. 비정규직 선장과 선원들, 노후한 배, 과적, 과속, 미숙한 선박운항, 허술한 안전 검사, 형식적 비상대피 훈련, 이를 눈감아준 관계기관, 전관예우와 낙하산, 가라앉는 배 안에 그대로 있으라고 한 선사의 경영진 등 손볼 곳은 많지만 너무 느리게 움직인다.

안전도 하나의 산업이 될 수 있다. 안전점검을 정례화하고, 철두철미하게 그리고 대대적으로 하다 보면 사람이 필요하고 장비가 필요하고 부품이 필요하고 일감이 늘어난다. 그만큼 서비스가 좋아지고 이용료는 올라갈 것이다. 정부의 예산도 더 많이 지출돼야 한다. 특히 철도, 산업단지, 지하철, 댐 등 노후 인프라에 대한 집중 감시와 투자가 필요하다. 준공된 지 30년이 지난 고령 인프라 시설을 개선하기 위한 투자는 국민들의 안전과 삶의 질 개선은 물론 경기 활성화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이처럼 국민들의 의식과 시설 인프라를 바꾸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서 나라 전체를 바꿔야 한다. 사람과 생명을 존중하는 문화를 정착시켜야 하고, 이를 위해 필요한 교육, 훈련, 법령, 제도 등 각종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이제는 안전사회로 바꿔야 한다. 그것이 세월호 희생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는 길이다. ‘위험사회’의 저자 울리히 벡 교수는 ‘우리를 위협하는, 발생가능성 있는 미래의 사건’을 위험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불확실하지만 일어날 가능성이 있으며, 통제하기 어렵고, 측정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두렵고 불안하다. 도처에 이러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우리 사회는 위험의 발생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위험사회를 안전사회로 바꿀 책임은 정부 행정기관에 있다. 그러라고 그들을 그 자리에 앉혀 놓았다. 우리 사회가 그리고 우리 공무원들이 은행나무로 채워진 노란 ‘기억의 숲’을 조성해 준 헵번의 발뒤꿈치라도 제발 따라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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