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물의 층고를 구체적으로 규제하는 것은 마땅치 않다. 층고 규제는 한강변의 경관을 공공재로보고 공공의 이익을 극대화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그 수단은 개인에 따라 정책 입안자에 따라, 시대에 따라 달랐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한강 르네상스 계획은 한강변에 랜드마크가 되는 마천루를 짓는 내용이 골자로, 한강변 관리계획과는 정 반대였다. 하지만 오 전 시장도 취지는 공공재로서의 한강변 경관을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누릴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같은 목적에 수단이 여러개가 나올 수 있다면 그 정책은 최선은 아니다. 단지 정책권자의선택의 결과일 뿐이다. 이런 정책으로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다. 차라리 시장의 오류가 있더라도 이런 경우엔 시장의 순기능을 믿고 맡기는 게 상책이다.
하지만 마땅치 않을지언정 한 번 세워진 원칙은 쉽게 바뀌어서는 안된다. 정책의 선악보다 일관성이 더욱 중요한 경우가 있는데 한강변 관리계획이 대표적인 예이다. 좋든 싫든 한강변 재건축을 추진하는 조합은 원칙에 맞춰서 정비계획을 짜면된다. 층고가 올라가면 사업성이 다소 좋아진다는 주장도 있는데, 35층 정도면 최대 용적률을 충분히 맞출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시각이다.
35층 규제는 재건축을 추진하는 조합들마다 반발했다. 그 때마다 박 시장은 규제적용에 예외를 두지 않았다. 층고 규제가 처음 적용된 신반포1차(지금은 아크로리버파크)의 경우 38층으로 지어졌는데 규제가 완화된 게 아니라 하단부 필로티 공간을 고려해 그만큼 위로 올린 것이다. 반포주공 1단지의 경우 박 시장이 재선 당시 규제완화를 구두로 약속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엄격히 규제가 적용됐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시가 35층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을 논의했다는 것은 스스로 정책의 신뢰성을 깎아먹는 자충수다. 박원순 시장과 수하 참모들도 이같은 사실을 모를 리 없다.
만약 이같은 논의가 실제로 상당히 구체적으로 이뤄졌다면 박 시장은 상당히 알파고 같은 사람이다. 특정한 목적을 성취하는 데 최적화된 프로그램대로 사고하는 알파고 말이다. 알파고는 이세돌과의 대국에서 자충수로 보이는 수를 여러차례 뒀는데 결과적으로 그 수가 승리를 쟁취하는데 최적화된 수였다.
박 시장이 정책의 신뢰성에 상처를 주면서까지 성취하려는 특정한 목적은 과연 무엇일까. 물론 35층 규제완화에 대한 논의가 실제로 있었다는 전제하에서 말이다.
공교롭게도 선거의 계절이다. 35층 규제 완화는 압구정 지구 24개단지 1만2000여 가구 등 한강변 재건축 이해당사자들의 표심을 얻기엔 최적화된 알파고식 수다.
박 시장이 실제로 이 수를 둔다면 스스로 알파고와 같은 인공지능으로 대체가능한 리더라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다. 선거에 이기는 특정 목표에 최적화된 프로그램은 얼마든 지 양산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