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김아름 기자 = 배우 김선영. 이 이름을 듣고 있자면 많은 이들의 머릿 속에는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tvN ‘응답하라 1988’에 출연해 ‘선우 엄마’ ‘진주 엄마’로 열연을 펼쳤던 배우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그 배우 김선영이 아닌 또 다른 배우 김선영은 벌써 26년째 안방극장에서 꾸준히 활약하고 있는 베테랑이다.
톱스타 반열에 오른 이병헌, 손현주 등과 입사동기로 1991년 KBS 공채 14기 출신이다. 최근 김선영은 새로운 이름 김지윤으로 개명했다. 그리고 새로워진 자신의 이름과 함께 연기에 대한 마음을 다시금 다잡았다.
현재 KBS2 TV소설 ‘내 마음의 꽃비’(연출 어수선, 극본 한희정 문영훈)에서 배우 김명수(박민규 역)가 즐겨찾는 카페의 ‘정마담’으로 출연하고 있다. 비록 적은 비중이지만 극에 꽤 중요한 역할을 이끌어가는 조연이다.
그런 김선영이 최근 김지윤으로 개명을 바꾼 이유가 궁금했다. 혹시 ‘응답하라 1988’ 김선영을 의식해서였을까.
“김선영 씨 때문에 바꾼 것도 맞지만, 예전부터 받아놓은 이름이에요. 91년도에 입사해 섣불리 이름을 바꾸지 못하다가 너무 많은 동명이인들 때문에 이번 기회에 바꾸게 됐어요. 김지윤. 배우로는 이 이름이 없더라고요. 제가 현재 매니저 없이 일을 하다 보니 드라마에 출연하면서도 제대로 된 홍보를 하지 못했어요. 점차 비중이 늘어날 것 같아요.”
김지윤의 전작은 KBS1 ‘산너머 남촌에는’이다. 지난 2012년부터 2014년까지 방송된 이 드라마에서 김지윤은 야무지고 딱 부러지는 성격으로 극중 규식(김진서 분)의 아내 윤미 역으로 열연을 펼치며 눈도장을 찍었다. 이후 2년여의 공백기를 끝내고 ‘내 마음의 꽃비’에 출연하며 다시 연기 활동을 재개했다.
그는 공백기에 배우 김지윤보다 교수 김지윤으로 불리는 날이 더 많았다. 현재 국민대학교 컨버전스에듀케이션 엔터테인먼트 학과에서 연기 전공의 주임 교수로 재직 중이다.
“두 가지 직업이죠. (웃음) 제자들을 가르치면서도 저도 배우는 거죠. 아이들을 가르치며 ‘내가 잊고 있었구나’ ‘나도 열정이 있었지’ ‘꿈이 있었지’라는 걸요. 입사할 때 느꼈던 것들이 사라졌다가 학교를 다니면서 느끼게 됐어요. 그러면서 저도 연기를 하게 되면 대사가 적든 많든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금전적으로 큰 돈을 버는 것 보다도 정신적으로 성숙해지는 단계가 되는 것 같아요. 제게 아이들을 가르치는 건 정말 좋은 경험이죠.”
김지윤은 19세의 나이에 배우의 길로 들어서면서 제대로 된 공부를 하지 못했다. “배운 게 없어 혼자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는 말처럼 김지윤에게 공부는 또 다른 삶을 살게 해준 방법이었다. 현재는 박사 학위를 취득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사실 공부를 좋아해서 하는 게 아니에요. 저도 사실 뒤늦게 이렇게 공부를 하는 게 이해가 안될 때가 있죠. 하지만 10년 넘게 공부를 하고 있는데 지금은 너무 좋아요. 그냥 배우같이 살고 싶었어요. 연기에 대한 열정이 있고 꿈이 있으니 공부도 하는 것 같아요. ‘산너머 남촌에는’에 출연하면서 박사 학위를 밟기 위한 공부를 시작했죠. 제가 한다면 남들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대부분은 ‘안되면 되게 하라’고 하시지만 저는 안 된다 싶으면 빠르게 포기를 하는 편이죠.(웃음) 그런데 하다 보니 저도 되더라고요.”
일단 김지윤이 가진 ‘고학력자’라는 이름표보다 ‘배우’라는 이름표에 집중했다. 배우 김지윤. 왜 그는 배우라는 직업을 선택했을까. 또 왜 배우라는 직업의 매력에 푹 빠져 있을까.
“아무나 할 수 없는, 선택된 직업이잖아요. 남들은 하기 싫은데 저희는 원하죠. 배우는 제멋에 살잖아요.(웃음) 그 재미로 살아요. 누가 알아봐주면 더 좋겠지만 그것 보다 현장에 있을 수 있는 게 좋아요. 제가 한동안 쉴 때 촬영차만 봐도 피가 끓더라고요.(웃음) 현장에 있을 때가 정말 행복해요. 그런 마음이 이어져 학교로 갔을 때 아이들에게 좀 더 시너지 효과를 내죠. 배우는 저를 가장 행복하게 만들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줘요.”
‘한명회’ ‘장녹수’ 등 굵직한 작품에서 열연을 펼쳐온 26년차 배우 김지윤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김지윤은 이내 “‘산너머 남촌에는’”이라고 답했다.
“저는 태어날 때부터 도시에서 태어났어요. 시골에서는 생활해본적이 없죠. 그런데 ‘산너머 남촌에는’에 출연하면서 비가 오면 비 오는 걸 걱정하고, 농민 분들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고 자연을 알게 되고 순리를 알게 됐어요. 그때 ‘내가 늙어가는 건가?’라고 생각했어요. ‘산너머 남촌에는’ 드라마는 삶 그 자체를 보여준 드라마잖아요. 막장 드라마가 아닌 게 너무 좋았어요.” 현재 드라마 시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막장 드라마’가 아닌 ‘삶 그 자체’를 보여주는 ‘산너머 남촌에는’을 통해 배운 게 많았던 눈치였다.
그렇게 김지윤은 자신이 현장에서 배운 것들과 느꼈던 감정들을 또 다른 김지윤을 꿈꿀 제자들을 위해 힘을 쏟고 있었다.
“제가 공부를 하면서 느낀 게 있었어요. ‘아는만큼 보인다’였죠. 중요한 건 빠르게 가는게 아니라 끝까지 가느냐 마느냐예요. 이솝우화 ‘토끼와 거북이’의 내용이 정말 맞는 것 같아요. 저는 토끼였는데 이제 거북이가 됐어요. 예전엔 거북이었다가 지금은 토끼가 되는 분들도 많죠. 저는 끝까지 거북이처럼 가고 싶어요.”
김지윤은 여전히 자신을 부족한 배우로 이야기한다. 아직도 성장해야 한다고 거듭 말했다.
“저는 크게 성장하지는 않았지만 정말 꾸준히 했어요. 배우란, 잘 되면 정말 럭키한 직업이죠. 대신 모든 것은 본인 스스로가 짊어져야 합니다. 저 역시 연기, 배우가 숙제로 남아있어요. 어떤 배우가 되겠다는 것 보다, 저 스스로 진행할 수 있는 배우가 될지 저도 아직 궁금해요. 항상 제게 배우라는 직업은 퀘스천 마크에요.”
우리 시대에 ‘스타’는 많다. 하지만 ‘진정한 배우’는 드문게 현실이다. 스타는 밝게 빛나지만 언제든 사라질수도, 떨어질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스타라고 부른다. 하지만 배우는 다르다. 배우는 자신을 찾아주는 관객들, 시청자들, 팬들을 위해서라도 늘 그 자리에 있어 준다.
“전 정말 배우가 되길 잘한 것 같아요. 앞으로도 꿈이 많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늘 그 자리에 있는 배우요. 어떤 꿈이든 상관은 없습니다. 제가 꿈이 많기 때문에 학교도 오가면서 배우 생활을 하고 있잖아요. 제자들도 꿈을 키울 수 있는 좋은 교육자도 되고 싶어요. 연기, 배우를 어떻게 잘 하느냐가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전 그렇게 태어난 배우인걸요.”
다시 태어나도 꼭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김지윤. 아직도 자신은 진정한 배우가 되지 못했다고 말한다. 이게 과연 26년차 배우의 입에서 나올 말인가. 김지윤은 그렇게 오늘도 ‘틀에 갇힌 배우’가 아닌 늘 새로운 것을 만들어가는 배우가 돼 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