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항해술의 발달과 함께 근대식 등대가 등장하게 되는데,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는 1903년 6월 1일 인천 앞 바다의 섬, 팔미도에 세워졌다.
팔미도는 인천항에서 15.7㎞ 떨어진 섬이다.
면적 0.076㎢에 해안선 길이가 1.4㎞ 밖에 되지 않는 작은 섬이지만, 서남해에서 인천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위치해 해상교통 흐름의 중심적 기능을 담당하고 있었다.
1883년 인천 개항과 함께 일본과 서구 열강은 우리나라 연안에 등대 설비가 없어 함선의 운항이 어렵고 상선의 해난사고가 빈번해지자 등대 건설을 요구했다.
이에 정부는 인천항 관세수입의 일부를 건설비로 충당해 1902년 5월 등대건설에 착수, 1903년 6월 1일 점등하게 됐다.
해발고도 71m의 팔미도 꼭대기에 세워진 등대는 높이 7.9m 지름 약 2m로, 불빛은 10㎞ 밖에서도 식별할 수 있어, 인천항에 출입하는 선박들의 안전운항을 위한 지표 역할을 했다.
등대는 바닷물에 부식되지 않은 콘크리트와 대리석으로 했는데, 해양건축의 효시라는 의미를 높이 평가해 2002년 인천시 유형문화재 제40호로 지정했다.
팔미도 등대는 지난 100여 년간 인천 앞바다를 비추며 격동의 시기를 함께 했다.
6.25전쟁 당시 켈로부대를 중심으로 한 한미연합특공대가 인천해안을 진격해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끌수 있었던 것은 바로 팔미도 등대의 불빛 때문이었다.
2003년 12월 팔미도 등대는 현대적 조형미를 갖춘 100주년 기념 상징 조형물인 ‘천년의 빛’으로 교체 되면서 그 임무를 새 등대에게 맡기고 영구 보존하게 됐다.
그리고 2009년 팔미도가 일반인들에게 개방됐다.
오랜 세월 인천 밤바다를 지키는 수문장으로의 역할을 마치고 평화 기원 의 상징으로 첫 발을 내딛게 된 것이다.
시 관계자는 “인천 앞바다를 지키며 100여 년을 함께 한 팔미도 등대 불빛처럼, 인천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비추는 등대의 역할을 해 나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