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박정수·신희강 기자 = 방송통신산업 역사상 가장 긴 인수·합병(M&A) 심사 기간으로 얼룩질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M&A 건이 다음 달 있을 제20대 국회의원 총선거 전에 결론이 날지 관심이 쏠린다.
특히 심사주체인 미래창조과학부와 공정거래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등 정부의 명확한 입장이 나오지 않으면서 논란이 가열되는 모양새다.
계속되는 업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원론적인 입장만 고수하고 있다. 전기통신사업법상 기간통신사업자의 합병 절차에 따라 심사를 진행해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다.
M&A에 대한 뚜렷한 심사 과정을 공개할 의무가 없다는 태도도 여전하다. 4월 총선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정책 방향이나 인가 조건에 대한 정확한 입장 표명이 여전히 모호한 것이다.
양환정 미래부 통신정책국장은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M&A는 현행 법정 근거(전기통신사업법)에 따라 공정위와의 협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원론적인 답변만 내놓았다.
선중규 공정거래위원회 기업결합과장 역시 "공정거래법에 따라 기업들의 경쟁 제한성 여부를 심사하고 있다"면서 "국가산업 발전과 이용자 편익에 유리한 것인지를 놓고 따져볼 것"이라는 상투적인 대답에 그쳤다.
지난해 12월 SK텔레콤이 CJ헬로비전 M&A 신청서를 제출한 지 벌써 석 달이 지났지만 정부의 입장 표명은 요지부동인 셈이다.
정부는 M&A에 관한 공청회와 토론회를 거치면서 각 계의 의견수렴을 거쳤다고 설명했지만, 뾰족한 대안을 끌어내지 못했다는 것이 안팎의 지적이다. 오히려 부처별 구체적인 심사 항목과 심사 과정에 참여하는 각종 위원회 구성이 공개되지 않으면서 업계의 빈축을 샀다. 이는 심사 과정에서 정보를 공개하는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와 합병 심사과정에서 기업이 제출한 모든 정보가 열람 가능하도록 하는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와 상당히 다른 양상이다.
이에 대해 양 국장은 "심사과정을 공개해야 하는 법적인 근거는 없다"면서 "설사 정보공개 요청이 있더라도 기업들의 영업비밀과 개인정보보호 등의 사유가 있다면 공개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전기통신사업법을 보면 정부가 심사과정을 공개해야 한다는 의무는 없다. 문제는 정부가 M&A 심사의 명확한 기준도 없다는 점이다. 선진국들처럼 투명한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지난달로 예고된 M&A 허가 여부가 한 달 넘게 미뤄지면서 정부의 역할론에 대한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심사 기한과 상관없이 충분히 검토하겠다는 입장이지만, 4월 총선이라는 변수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관련법에서 정한 최대 심사기간인 120일을 고려했을 때 늦어도 이달 말에는 결정해야 총선 전에 인수 과정이 마무리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4월 총선을 의식한 눈치 보기를 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일단 총선을 넘어서면 2년마다 돌아오는 상임위원회 재구성 시기가 오는 5월이므로 M&A 건이 빨라야 6월에나 결정이 날 수 있다.
송재성 미래부 통신경쟁정책과장은 "공정위의 협의 결과를 토대로 인수 과정을 진행해야 한다"면서 "공정협의라는 대원칙 아래에 진행하기 때문에 확실한 M&A 시점을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 "합병 단기간에 판단할 문제 아냐" vs "과거 합병 상대적으로 심사 기간 짧았다"
SK텔레콤은 CJ헬로비전 M&A 심사가 유례없는 장고에 돌입하면서 정부의 조속한 결단을 바라는 눈치다.
지난해 12월 1일 M&A 인허가 신청서를 제출한 이래 오는 15일을 기준으로 106일이 지난다. 그동안 최장 기간이었던 SK텔레콤과 신세기통신의 합병 기간은 105일이다.
경쟁사인 KT-KTF 합병과 LG텔레콤-파워콤-데이콤 인수합병은 각각 56일과 59일이 걸려, 상대적으로 심사 기간이 짧았다.
SK텔레콤 측은 "해외에서도 이동통신 관련 M&A 심사 기간은 국내보다 짧은 시간에 마무리됐다"면서 "특히 이번 M&A는 동종업계 결합도 아닌 글로벌 추세인 이종업계 결합이다"라고 설명했다.
세계이동통신사업자연합(GSMA)은 디지털 생태계를 위한 새 규제 프레임워크 리포트에서 이동통신사 M&A 심사 기간이 59일이라고 밝힌 바 있다.
특히 ‘기업활력제고특별법(원샷법)’이 시행될 경우 기업 M&A의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나타나는 등 기업의 선제적인 구조재편을 지원하는 정부의 의지가 강력한 상황에서 M&A 심사도 속도를 낼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지난 2월 민관합동 설명회에서 원샷법 적용 시 기업의 M&A 시뮬레이션 결과를 발표한 결과, 이사회부터 합병 등기까지 약 75일 걸리는 일반 합병이 약 50일로 줄고 비용은 약 6000만원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SK텔레콤 관계자는 "합병법인이 통신과 방송, 콘텐츠 산업 활성화를 위해 대규모 투자를 약속한 만큼, 성장 절벽에 갇힌 업계의 돌파구 확보를 위한 체질 개선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KT·LG유플러스 등 M&A 반대 측에서는 해외의 경우 M&A 허용·불허 시에도 규제기관이 최소 8개월 이상의 시간을 심사에 쏟아부었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AT&T와 T모바일'(합병 심사 2011년 3~12월), '컴캐스트와 타임워너케이블'(2014년 2월~2015년 4월) 등을 예로 들었다.
무엇보다 M&A 심사과정에서의 정보 공개를 요구했다. KT 측은 "미국의 FCC만 봐도 합병 심사과정에서 기업이 제출한 모든 정보를 공개한다"며 "이번 M&A에 대한 모든 정보를 공개하고 업계와 학계, 소비자 등의 공감대를 이뤘으면 한다"고 전했다.
아울러 "이번 M&A는 저렴한 비용으로 지배력을 공고히 하고 불공정 경쟁을 유발하는 행위로 불허돼야 마땅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