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정진영 기자 = "'건축학개론'의 수지 같은 캐릭터를 찾는다는 말을 들었어요. 하늘하늘한 카디건에 분홍 계열 의상을 입고 차분하게 가서 오디션을 봤죠. 그날 그 오디션이 시작이었어요."
시작은 특별하다. 입학하던 날, 첫 출근, 첫 월급, 첫사랑 등. 첫 경험이 주는 강렬한 감정은 시간이 지나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게 마련이다.
"기대를 안 해서 잘한 것 같아요. 갑자기 잡힌 오디션이기도 했고, 당시 오디션에 굉장히 많이 떨어질 때라 '내가 잘하려고 해서 되는 게 아니구나' 싶은 생각도 있었고. 그날도 오전에 오디션을 하나 보고 오후에 '아름다운 당신'으로 넘어간 거였어요. 엄청 지쳐서 그냥 힘을 다 빼고 대사도 툭툭 던지듯이 했어요. 그런데 오히려 그게 더 좋게 보였던 것 같아요."
김채은은 곧 브라운관에 데뷔했다. MBC 일일드라마 '아름다운 당신'에서 차태우 역의 공명과 호흡을 맞추는 생활력 강하고 자존심 센 이윤이가 그의 첫 번째 얼굴이 됐다.
김채은이 서울에 온 건 2013년 추운 겨울. 고등학교 3학년, 만 18세의 어린 나이에 홀로 서울에 둥지를 틀었다. 대구에서는 연기자가 될 준비를 하기 어려워 끈질기게 부모님을 설득한 결과였다.
"윤이가 참 외로운 캐릭터더라고요. 솔직히 처음엔 자신 있었어요. 고등학교 때 서울로 혼자 전학을 와서 3~4년 동안을 부모님과 떨어져 있었으니까 윤이가 가진 외로움을 잘 표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어느 날 보니 제가 외로움을 '연기'하고 있더라고요. 윤이가 돼야 할 제가 윤이를 동정하고 있었던 거죠. 부모님의 사랑을 충분히 받았던 제가 서울에 와서 느꼈던 외로움은, 돌아보니 그리움에 더 가까운 것이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김채은은 성장하고 있다. 매일매일 모니터를 할 수 있는 일일드라마를 데뷔작으로 만난 건 행운이었다. 외로움에 이골이나 덤덤해지기까지한 윤이가 태우의 사랑을 받으며 점차 밝게 변하는 점도 김채은이 편안하게 연기를 하는 데 도움을 줬다. "대사를 안 할 때 입 모양을 어떻게 하고 눈을 몇 번이 깜빡여야 하는지도 몰랐던" 김채은은 이제 "실수를 하면 안 되는 프로의 세계"를 실감할 만큼 자라 있다.
"현장에 나가면서 학교의 중요성을 더 크게 느꼈어요. 대학교 1학년 때는 왜 배우는지 몰랐던 것들의 중요성을 체감하게 된 거죠. 그래서 후배나 동기들이 제게 이런 저런 걸 물어보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줄 수 있게 됐어요."
이제 막 시작선에 섰을 뿐인 이 욕심 많은 배우는 언젠가 이런 조언들을 글로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바람을 갖고 있다. 달리기와 글쓰기를 사랑하던 그 시절 여고생은 아니지만, 여전히 글에 대한 로망이, 자신이 느낀 걸 누군가와 나누고 싶은 소망이 마음 한 구석에 살아 있기 때문이다.
"고3 때부터 혼자 있다 보니 시간이 남을 때마다 적는 게 습관이 됐어요. 여자들이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느끼는 점이 있잖아요. 그런 것들을 언젠가 내 딸이나 딸과 같은 친구들에게 알려주고 그들의 힘이 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