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차량산업위기] ⓽ ‘개조사업’도 돈 때문에 안 돼···사방 막혀

2016-02-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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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가는 철도차량 (하)

현대로템이 수주해 공급한 호남고속철도 신형고속차량. [사진=현대로템 제공]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창정비’라는 개념이 있다.

군대에서 사용하는 장비 및 시설에 대한 정비를 할 때 최상위 정비단계로 하위 정비 단계의 능력을 초과하는 정비에 대한 기술 및 정비 지원을 담당하는 완전 복구 및 재생 정비의 단계를 말한다. 완제품인 군사 장비를 완전 분해해 수리하고 개조하고 재생하며 추려쓰고, 부품을 교체하는 등의 작업을 통해 세 것과 같은 수준으로 복구·재생한다.
철도차량 부문에서는 창정비가 아닌 ‘유지보수’라는 개념이 쓰이고 있다고 한다. 국토교통부는 철도차량에 대해 기존 내구연한제 대신 ‘기대수명제’를 도입했다. 기대수명은 ‘철도차량의 제작 당시에 기대했던 성능을 유지해 사용가능한 기간으로 운영자가 제작사와 협의해 제시하는 수명’으로 정의 됐다. 철도차량 수명이 20년이 경과한 시점부터는 주기적(매 5년, 고장빈발 시 3년)으로 정밀안전진단을 거쳐 안전과 성능에 문제가 없는 경우에 한해 계속 사용이 가능하도록 했다. ‘정밀안전진단’은 전문기관이 실시하며 철도차량의 변형유무, 결함유무, 전기특성 및 주행ㆍ제동성능 등 안전성능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안전정밀진단만 통과하면 철도차량은 계속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군사 장비는 고가이며 장기간 사용하기 때문에 창정비를 활용하고 있다. 창정비 만큼은 아니지만 이 수준만큼의 정비·관리 체제를 철도운영기관이 도입한다면 나이가 든 ‘늙은 철도차량’이 무조건 안전하지 않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이 될 수 있을 듯하다. 철도차량도 고가이며 장기간 사용해야 한다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안전정밀진단이 창정비 수준이거나 그에 버금간다고 하면 국민들은 정부와 철도운영기관들의 말을 믿을 것이다.

◆‘고장 부품’만 갈아 끼우는 정비 머물러
정밀안전진단을 하고 있지만 철도차량 사고는 지금도 계속 일어나고 있다. 정밀하게 안전을 진단했는데도 말이다. 이유는 후속 조치인 ‘정비 작업’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철도산업 관계자들은 전한다.

이들은 철도운영기관들이 20~30년 된 전동차를 고장날 때마다 부품을 일부 갈아 끼우는 방식으로 수명을 연장해 왔다고 주장한다. 내구연한이 도래하면 최적품으로 갈아주는 게 가장 좋은 데 철도운영기관들이 적자가 심하다 보니 그렇게 못한다는 것이다. 서울시의 경우 최초 건설은 지원하지만, 운영상 지원은 별로 안해 주니 악순환이 되풀이 되고 있다.

철도 운영기관들이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적극적인 전동차와 부품 교체가 어렵다. 안전진단만 통과하면 수명이 지난 부품도 그대로 사용한다. 불안하지만 일단 통과 됐으니 쓸 수 밖에 없다.

전동차는 물론 부품들을 검사하는 능력도 키워야 하는데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의 경우 내구연한이 훨씬 지난 전동차와 부품을 사용하면서도 3년 주기 대점검 외에 격월 점검에선 육안 점검에 의존한다고 한다. 육안으로 일일이 확인할 수 없는 전동차 내부 부품들은 정확한 점검이 쉽지 않다.

새로운 차량 구매가 어렵다면 노후 차량을 개조해 새 차 수준으로 업그레이드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철도차량산업에 종사하는 기업들도 신규 발주가 안된다면 개조 사업을 확대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일부 업체는 개조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개조사업 조차도 추진이 어렵다고들 한다. 철도차량 업계 고위 관계자는 “지방자치단체 소속 철도 운영기관들이 노후 차량 개조를 통해 필요로 하는 철도차량을 확보하기 위한 검토를 하고 있지만 역시 문제는 돈이다”라면서 “차량 개조 또는 리모델링은 추진장치를 비롯한 전동차 안전에 핵심적인 부품과 내부설비 수십 종을 교체해야 하는데, 이 또한 수천억 원대의 예산이 필요하기 때문이지만 교체 부품도 제대로 못하는 상황에서 개조조차 꿈도 못꾸고 있다”고 전했다.

◆노후와 이슈, 전동차 전 생예 놓고 들여다봐야
차량 노후화 이슈는 단순히 전동차량 수명을 25년으로 정하느냐, 40년으로 늘리느냐, 무한정으로 놓느냐의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전동차가 태어난 순간부터 폐차까지의 전 과정을 놓고 봐야 한다.

물론 국내 철도차량 산업은 업계의 지속적인 연구개발(R&D) 및 기술과 품질향상으로 생산비용을 낮추고 같은 가격에 더 좋은 성능의 전동차량을 개발했다. 하지만 최저가 입찰제는 낮은 가격에 맞추기 위해 업체들이 당초 의도한 수준보다 낮은 성능(입찰 기준에 준하는 수준)으로 제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기업이 당초 의도했던 최선의 성능을 구현하지 못한 채 납품된 전동차들은 법으로 정한 매뉴얼 대로 낮은 수준의 정비를 받으며, 적기에 부품 공급도 받지 못한 채 20~30년 동안 전국의 철길을 달렸고, 달리고 있다. 정확성과 객관성을 의심받는 안전정밀진단을 통과하면 더 오랜 기간 달릴 것이다.

증폭되는 안전에 대한 불안감과 못지않게, 현대로템을 비롯한 국내 철도산업 업계들은 생존에 필요한 최저 일감도 확보하지 못해 경영난이 가중되고 있다. 철도산업 전체의 악순환을 끊어내야 할 근본적인 조치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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