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윤은숙 기자 = 힐러리 클린턴의 방화벽이 점점 공고해 지는 모양새다. 27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민주당 프라이머리에서 힐러리 클린턴은 무려 73.5%의 지지율을 얻어 26%를 획득한 버니 샌더스 후보를 50%포인트에 가까운 격차로 따돌렸다.
이번 승리로 클린턴 전 장관 선거캠프는 다음 달 1일 '슈퍼화요일' 경선에서도 승리를 거둘 수 있는 확률을 더욱 높였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승리의 기반에는 2008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지지했던 흑인 유권자들의 몰표가 있었다. 전체 민주당 유권자의 55%(2008년 경선 기준)에 달하는 흑인들이 클린턴을 강력하게 지지한 것이다. 방송사 출구조사에 따르면 흑인 유권자 가운데 무려 87%가 클린턴에게 표를 던졌고, 샌더스는 겨우 13%의 지지를 얻었다.
백인 유권자는 샌더스가 58%를 얻어 42%에 그친 클린턴을 16%포인트 앞섰지만 샌더스의 승리를 이끌어 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처럼 흑인유권자들이 클린턴을 지지하고 있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꼽히고 있다. 우선 힐러리 클린턴은 선거 초반부터 흑인 유권자들의 전폭 지지를 받고 있는 오바마 행정부의 승계자를 자처하고 있다. 이와 함께 제임스 클리번(민주당) 하원의원을 비롯한 지역사회의 흑인지도자 대다수도 클린턴의 손을 들어줬다. 전국적 지명도도 버니 샌더스에 비해 훨씬 앞선다. 1990년대 초반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부터 흑인을 비롯한 소수인종에 우호적인 교육과 인종정책을 펴왔던 것도 크게 도움이 됐다는 평가다.
한편 클린턴 전 장관은 27일 투표가 종료된 지 약 30여분 뒤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콜럼비아에서 지지자들과 만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말을 듣지만, 미국은 위대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러나 우리는 정말로 미국을 하나로 다시 만들어야 한다"고 말을 이은 뒤 "벽을 만드는 대신 장애물을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라는 구호를 사용하면서 당선되면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을 세우겠다는 공약 등을 내세우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를 겨냥한 것이다. 대세론에 힘을 받고 있는 클린턴이 이제는 당 내 경쟁후보가 아닌 공화당 후보에게 점차 날을 세우고 있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한편 샌더스의 돌풍은 남부를 지나면서 다소 꺾이는 모양새다. 뉴햄프셔에서 백인 유권자들이 '몰표'를 던졌던 것과는 정반대로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는 흑인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
흑인 영화감독인 스파이크 리가 라디오 광고를 만들고 흑인 래퍼인 킬러 마이크와 코넬 웨스트 프린스턴 대학 명예교수도 샌더스를 적극적으로 도왔으며, 유세 과정에서는 1960년대 마틴 루서 킹 목사와 함께 워싱턴 D.C.에서 행진하고 시카고대학 재학시절 흑인차별에 저항하는 시위를 하다 체포된 경력을 집중 부각시켰으나, 반전을 이루기에는 힘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흑인 유권자들의 클린턴 지지 탓에 '슈퍼화요일' 경선에서도 샌더스는 고전할 것으로 보인다. 주요 격전지인 텍사스와 조지아, 버지니아, 아칸소 등은 흑인 유권자들의 비중이 큰 탓이다.
텍사스와 조지아, 앨라배마와 같은 남부 주들은 물론이고 '스윙 스테이트(경합주)'인 버지니아 주도 흑인 유권자 비중이 30%를 넘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클린턴이 이번에 압승을 거둔 기세를 몰아 '슈퍼화요일' 경선에서 큰 승리를 거둔다면 예상보다 일찍 민주당 경선의 윤곽이 잡힐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