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석유선 기자 = 날 밤을 새며 24시간 연설하는 국회의원들로 인해 국회 본회의장의 마이크가 꺼질 줄 모르고 있다. 정의화 국회의장이 직권상정한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테러방지법) 제정을 막기 위한 야당 의원들의 릴레이 고군분투 때문이다. 언론 또한 24시간 생방송 중계까지 마다하지 않고 있다. 국회 출입기자들도 평생 한번 볼까말까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이야기다.
1969년 이후 47년 만에 부활한 필리버스터는 매일 ‘신기록’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23일 첫 주자로 나선 김광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5시33분간 발언해 과거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연설시간(5시간19분) 돌파는 서막에 불과했다. 세 번째로 연단에 오른 은수미 더민주 의원이 10시간18분 발언해, 과거 박한상 신민당 의원이 세운 국회 최장 발언시간(10시간15분)을 깨 화제를 모았다.
필리버스터가 좀체 멈출 줄 모르자, 헌정사상 처음으로 상임위원장(김영주, 김춘진)이 국회의장단을 대신해 한때 본회의 사회를 맡기도 했다. 필리버스터를 직접 보겠다며 본회의장에 국민 방청객들이 줄을 서서 대기하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새누리당의 반발에도 야 3당은 필리버스터를 멈출 생각이 없어 보인다. 테러방지법의 독소조항이 수정되지 않는다면 오는 29일 본회의는 물론 2월 임시국회가 끝나는 다음달 10일까지 필리버스터를 이어가겠다며 의원들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일각에서는 필리버스터를 두고 ‘신기록 세우기 게임하나’ ‘국회마비 사태다’ ‘본회의장을 총선 유세장으로 만들려 한다’는 비난도 나온다. 그러나 국회선진화법 덕분에 부활한 필리버스터가 없었다면, 몸싸움이 아닌 무제한 토론으로 법안을 저지하려는 야당의 모습을 과연 우리 국민들이 볼 수 있었을까 싶다.
현행 국회법상, 야당이 스스로 중단하지 않으면 필리버스터를 멈출 수가 없다. 필리버스터 끝에 설사 테러방지법이 통과되더라도 여야 모두 성패를 굳이 따지지 않았으면 한다. 국민들이 모처럼 ‘진정한 의회 민주주의’에 대해 곱씹어 볼 소중한 기회를 제공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