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지자체들이 조성한 지역산업특구는 지난해 말 기준 172곳이 지정돼 있다. 국가에서 지정한 경제·외국인투자 특구까지 포함하면 400곳에 육박한다. 광역시뿐만 아니라 군 단위 지자체까지 너도나도 특구 조성에 뛰어든 탓이다.
지난해 말 기준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는 모두 250곳이다. 지자체 1곳당 1.5개의 특구가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그야말로 ‘특구 공화국’이라고 표현해도 될 정도다.
이 와중에 정부와 지자체는 지속적으로 특구를 지정하고 있다. 지난 17일 정부가 내놓은 9차 무역투자활성화에서도 수도권 규제완화 일환으로 서울 양재와 우면에 기업 R&D 집적단지 조성을 화두로 꺼냈다.
정치권은 특구 지정을 언제 부터인가 지역 숙원사업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오는 4월 총선을 준비하는 후보자들도 공약사항에 ‘특구 지정’을 빼놓지 않고 넣는 게 현실이다.
이처럼 한반도가 특구 열풍에 사로잡혔지만 정작 제대로 가동되는 곳은 찾기 힘들다. 국가가 지정한 경제특구 기반시설을 유지하는데에만 무려 4500억원 가까운 예산이 매년 투입되고 있다. 하지만 경제특구의 매력은 해가 갈수록 반감되는 모양새다.
외국인투자지역, 자유무역지역, 경제자유구역 등은 입주기업 저조, 정주여건 미흡 등의 문제를 노출하며 슬림화 논의가 한창이다.
지역산업특구도 만만치 않다. 대부분 규모가 작은 지자체들은 특산물을 중심으로 특구 지정을 하는 수준이다. 기업 유치나 수익 창출 목적보다는 기존 지역산업을 체계화 하겠다는 의도가 크다.
일각에서는 정부와 정치권이 지역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나눠먹기식’ 특구 지정을 해준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산업적 효과보다는 선거 때마다 지방자치단체와 정치권 요구를 고려해 여론 잠재우기용으로 지정된다는 것이다. 다른 특구와 역할 분담이나 연계 등 체계적 분석 없이 특구 지정이 이뤄지다 보니 대구·경북 지역의 경우 5개 특구가 중복으로 지정되는 등 사례도 발생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경제자유구역의 경우 지난해 3월까지 전체 면적의 43.1%(145㎢)가 개발되지 않았다.
경제자유구역 중에서 장기간 개발이 지연된 곳은 2010년 12월과 2014년 8월 지정 해제돼 전체 면적이 571㎢(2008년)에서 335㎢(2014년 말)로 축소됐다.
특구 실효성이 제기되자 정부는 지난해 말 경제특구를 포함한 지역산업특구의 경제성을 따져 통·폐합 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기획재정부, 미래창조과학부, 산업통상자원부, 국토교통부, 중소기업청 등 관련 부처가 공동 연구용역을 발주해 경제특구 구조조정 방안을 조만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그동안 실효성 논란이 제기된 경제자유구역·자유무역지역·외국인투자지역 등 외국인 투자 관련 특구에 대한 구조조정은 이미 착수한 상태”라며 “규제프리존 활성화 차원에서도 불필요한 특구를 속아내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정부는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산업연구원(KIET) 등 5개 연구기관이 지난해 말 연구용역을 끝마쳤다. 정부는 이 용역보고서를 토대로 통·폐합 수위를 결정할 방침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연구용역 결과를 토대로 특구 제도 전반의 경제성과 타당성을 다시 검토하겠다”며 “올해 상반기까지 종합적인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어 “기존 특구가 대규모 개발 위주로 계획되다 보니 개발 시간이 지나치게 오래 걸리고 주민들 재산권이 제약되는 문제도 있었다”며 “굳이 필요 없는 곳은 해제하고 유사 특구는 통합하는 방향을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