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노승길 기자 = 지난해 4000여 곳이 넘는 국내 포도농가가 사실상 문을 닫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칠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인해 수입 포도가 밀려오면서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이다.
또한 포도 가격 하락으로 채산성이 나빠지자 포도 농사를 접고 복숭아, 사과, 자두, 블루베리 등 다른 작물로 갈아타려는 농가도 많다.
18일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각 지자체를 통해 농가 폐원과 이에 따른 FTA 폐업지원금을 신청한 포도 농가는 전국에 걸쳐 모두 4383곳에 달한다.
FTA 폐업지원금은 FTA 때문에 계속 재배·사육하기 곤란하다고 인정한 과수·축산 품목에 대해 농업인이 폐업을 원하면 3년간 순수익을 지원하는 제도다.
2008년 이후 7년만에 포도가 폐업지원금 지급 대상 품목으로 지정되면서 작년에 시설포도 농가 3702곳과 노지포도 농가 681곳이 문을 닫고 지원금을 받겠다고 신청했다.
폐업 희망 면적은 노지포도 1406㏊, 시설포도 269㏊ 등 총 1675㏊다. 이는 작년 국내 전체 포도 재배면적(1만5397㏊)의 약 11%에 해당한다.
폐원을 신청한 포도농가는 재배 규모가 영세하고 고령농이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평균 재배면적이 0.4㏊로 전국 평균(0.5㏊)보다 작다. 또 노지포도 농가의 64.9%, 시설포도 농가의 39.4%가 65세 이상 고령농이다.
지난해 폐원을 신청한 포도 농가는 이달 말까지 포도 나무를 캐내 폐업 절차를 마무리한다.
앞서 2004∼2008년 정부가 한·칠레 FTA에 따른 폐업지원제도를 운용할 때 5년간 포도 농가 1560곳, 면적 기준으로 482㏊가 폐원했다.
이 밖에 폐업지원금과 무관하게 스스로 농사를 접는 포도 농가도 매년 100∼200㏊에 이르는 것으로 농식품부는 파악하고 있다.
2000년 2만9000㏊이었던 전국 포도 재배 면적은 작년 1만5397㏊로 15년새 절반으로 줄었다. 포도 생산량도 통계청 집계 기준 2000년 47만6000t에서 2014년 26만9000t으로 43.5% 감소했다.
포도 ㎏당 평균 도매가격은 캠벨얼리가 2011년 4716원에서 2015년 3590원, 거봉이 5810원에서 4831원으로 떨어지는 등 줄곧 하락하는 추세다.
대신 포도 수입은 큰 폭으로 늘었다.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신선 포도 수입량은 6만6193t, 수입액은 2억116만달러로 역대 최대 규모다.
수입량 기준으로 칠레산이 76.5%(5만631t)로 가장 많고, 페루산(13.6%·8983t)과 미국산(9.11%·6034t)이 뒤를 이었다.
작년 포도 수입량을 칠레와 FTA를 맺기 전인 2000년(7921t)과 비교하면 8배 넘게 늘었고, 5년 전인 2010년(3만4963t)보다도 약 2배로 증가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FTA 이후 포도 가격이 많이 내려간데다가 고령농이 많아지면서 포도 농가 폐업이 늘었다"며 "최근에는 포도를 재배하던 농가가 가격이 좋은 복숭아 등으로 작물 전환을 많이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