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직장 관계자 두 사람과 업무이외의 참으로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와 한사람은 장기근속 군인이었고, 한사람은 고급장교였다. 우연히 꺼낸 이야기에서 장교의 군 생활 특성상 초등학교 입학 후는 거의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하고 그러다 보니 청소년기의 자녀들과 대화가 형성되지 못하고 한 달에 한번 집에 가봐야 자녀들과 싸움만하고 소통이 안 된다는 고민의 이야기!. 그중에서 선배 입장인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크게 소리 내어 웃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 시기에 그런 고민마저 안 해 보았기에 또한 요즘 사십대 군인 아빠들이 저런 것을 고민도 하는구나 하는 생각과, 다 성장한 내 자식이 대화를 안 하는 모습에만 서운해 하던 내 경험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요즘 부모의 성역할이 상당한 관심사이다. 또한 가족에 대해 잘하고 싶으나 유교적 기반으로 자란 기성세대 부모가 체득되지 못한 가정교육으로 인해 당황해하고 갈등하는 것이 현실이다.
내가 후배들에게 주로 강조하는 것은 나의 성장기를 자녀들에게 이야기할 때 내 고생만 강조하고 “너는 좋은 환경에서 공부도 못하느냐”는 식의 훈계는 갈등만 야기한다는 조언을 하곤 한다.
그러면서 과연 그에게 올바른 조언을 해준 것인가에 대해 스스로 반문하고 한다.
아빠는 권위적이어서는 안 되지만 권위는 있어야 하고, 친구 같은 모습이지만 친구여서는 안 된다. 아버지는 아버지고 아이는 아이다.
자식과 부모 간에는 분명한 선이 있어야 하고 아이가 정확히 인지하고 있어야하며, 그런 모습을 아들이 평가하는 것이다. 아버지의 바른 모습이 독립적인 어른으로 보고 자라는 아들에게 아버지상으로서의 작용이 더욱 중요하다.
그러함에도 권위주의만 내보이고 친구같이 한다고 친구가 되어 버려 결국은 아이 교육도 망치는 일이 허다하다.
아버지는 아버지로서 어머니보다 잘할 수 있는 것을 제공하는 것과 아버지로서 자신 있는 것이나 본인이 잘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 등이 좋다.
내 후배 중에 공부를 피하는 아들을 데리고 헬스를 하면서 타인으로부터 존경 받는 모습을 보여주거나 오토캠핑들을 통하여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스킨십을 통하여 엄청난 덩치에 넘치는 끼를 주체 못하는 아들의 사춘기를 슬기롭게 넘기는 좋은 모습을 보았다.
퇴근길에 한잔 걸치고 아들 앉혀놓고 용기내어 “아버지는 어려운 가정환경에 독학을 해서 군의 장교가 되었고 어쩌고” 하는 훈계는 훈계도 아니고 술주정이며 자식과의 관계만 더욱 악화 시킬 뿐이다.
10대 이후라면 세상물정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좋다.
아버지 본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즉 오늘 회사에서 직장 동료들과의 이야기, 최근 사회적 관심사나, 정치 이야기 등은 오히려 아이가 사춘기에 겪어야하는 관심과도 일치하여 대화의 통로가 되며, 장차 아버지가 되기 위해 준비 중인 아들에게 흥미진진하다.
또한 아이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간접적 경험을 한다.
아이는 엄마와의 대화를 통해 소통 능력 공감 능력을 배우고, 아버지와는 성숙한 대화 능력을 키운다고 한다.
아버지가 자기단어를 활용하는 것이 아이의 학업능력을 향상시키고, 규칙을 지키는 것을 배운다고도 한다.
양보다 질의 10분 대화를 하는 것, 어쩌다 한번이라도 차로 학원에 태워다 주면서 훈계보다는 위로를, 연민의 눈으로 한번쯤 바로 보는 것이 훌륭한 아버지 교육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들은 아버지를 닮고 싶어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