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열 칼럼] 샌더스 같은 정치인

2016-02-03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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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열(현대경제연구원 정책조사실장)

[김동열(현대경제연구원 정책조사실장) ]


요즘 미국 대통령 선거가 핫이슈다. 특히 민주당 경선이 재미있다. 멀찌감치 앞서가던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쫓기고 있다. 그녀는 남편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측면 지원을 하고, 오바마 대통령밑에서 국무장관으로서 소임을 무난하게 완수해 미국 최초의 여성대통령 자리가 멀어 보이지 않았다.

그런 그녀가 요즘 여유를 잃었다. 강력한 경쟁자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100여년간 공화당의 텃밭이던 미국 동북부 버몬트州를 변화시킨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가 주인공이다.
샌더스는 뉴욕 브루클린 출신이다. 가난하게 자랐고, 시카고대학 학생 시절에는 소위 '운동권'이었다. 그는 자칭 사회주의자다. 한국에서라면 종북 좌빨 정치인으로 낙인찍혀 오래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특히 1979년부터 2015년까지 무소속이었다. 무소속에다 자칭 사회주의자니까 워싱턴 정가에서는 소수파 중의 소수파다. 하지만 샌더스는 클린턴과의 지지율 격차를 거의 좁혔다. 아이오와州 경선에서는 클린턴에 0.2%포인트 차이로 아깝게 졌다. 뉴햄프셔州 여론조사 결과는 클린턴을 앞서고 있다. 아웃사이더 샌더스가 민주당 경선에서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이유는 뭘까?

우선 그의 튼튼한 정치적 뿌리다. 워싱턴에서는 소수파지만, 버몬트에서는 지지기반이 탄탄하다. 1981년 40세의 젊은 나이에 버몬트주 벌링턴시의 시장으로 뽑혔을때 여러 가지 참신한 정책을 선보였다.

호수가 보이는 경치 좋은 자리에 대규모 호텔을 짓겠다는 사람들을 물리치고 서민을 위한 임대주택을 세웠다. 대형 유통체인이 도심에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고, 동네 주민이 모여 만든 협동조합형 유기농 식품 중심의 슈퍼마켓을 지원했다.

그 성과를 토대로 벌링턴 시장에 세번(12년), 하원의원에 여덟번(16년), 상원의원에 두번(8년) 당선됐다. 무려 36년간 지역구에서 당선된 정치인이다. 그만큼 벌링턴市와 버몬트州에서는 샌더스의 인기와 지지가 확고하다.

또 그의 정책이 먹히고 있다. 그는 심화되는 소득불평등 해소를 위한 부자 증세, 월가 금융자본에 대한 규제 강화,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한다.

그의 지지층은 중산층과 서민, 노동조합과 청년층이다. 선거전이 시작되면서 골드만삭스와 월가의 금융자본을 더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골드만 삭스 등 월가의 거대자본으로부터 많은 후원금을 받는 점을 부각시키며 차별화하고 있다.

골드만삭스의 자산이 미국 GDP의 70%에 육박하고 있다며 빌 클린턴 대통령시절 폐기된 ‘글래스-스티걸법’을 다시 부활시켜 거대 금융자본을 분할시키겠다고 한다.

월가가 긴장하고 있다. 그의 이런 진보적인 정책은 미국의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글로벌 금융위기의 배후에 월가의 금융자본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힘을 받고 있다.

이밖에 그는 다수 유권자의 소액 후원에 의존하고 있다. 2015년 4분기에 힐러리 클린턴의 정치자금 모금액이 3700만 달러, 버니 샌더스는 3300만 달러로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샌더스의 후원자들은 바닷가 모래알만큼이나 많다. 무려 130만명이나 되는 후원자들이 십시일반으로 소액의 후원금을 모아 325만 달러를 채웠다.

2002년 우리나라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노란 돼지저금통을 전국적으로 모은 것처럼, 2016 미국 대선에서 샌더스 후보가 5달러 안팎의 소액 후원자를 전국적으로 조직하고 있다.

그것이 바람이 되고 태풍이 돼 아이오와州와 뉴햄프셔州를 강타하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의 대세가 흔들리고 있다.

소수의 거액 후원자로부터 무제한 정치자금을 모을 수 있는 ‘슈퍼팩’(Super Pac)을 거부하고, 청년층과 중산층, 서민과 노조원의 소액 후원에 기대고 있다. 그런 정치자금의 토대 위에서 ‘월가 출신 재무장관을 거부한다’는 샌더스의 연설도 자신있게 나올 수 있다.

특히 그의 정치적 자산은 신뢰다. “그의 말은 믿을 수 있다”고 한다. 1979년 정치에 입문한 이래 그의 주장에 큰 변화가 없었으며, 그의 가치를 벌링턴市에서 보여줬다.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정치, 협동조합과 공유경제, 부자 증세, 정부의 적극적 개입 등 진보적 색깔을 유지하고 있다.

30대에 정치를 시작한 젊은 정치인의 머리는 이제 백발이 됐지만 그의 꿈은 변색되지 않았다. 나이 70이 넘어서도 '곧은 낚시질‘을 하며 출사의 때를 기다린 강태공과 같은 정치인, 75세가 되도록 자신의 신념과 가치를 지켜낸 샌더스와 같은 정치인, 그런 흔들림없는 정치인이 그립다. 정치의 계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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