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열 칼럼] 그 많던 석과는 누가 다 먹었을까

2016-01-27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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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열 (현대경제연구원 정책조사실장)

[김동열 (현대경제연구원 정책조사실장)]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박완서의 장편소설이다. 여기서 싱아는 우리가 잘 모르는 수입 열대 과일이 아니다. 들판에 나가면 개천 주위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들풀의 이름이다. 제목과 달리 이 소설은 싱아에 관한 얘기는 아니다.

저자의 이야기이면서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 할아버지의 이야기다. 1931년생인 작가의 유년시절, 일제시대, 월남하여 서울에서 살던 이야기, 해방과 6.25 등 격동의 시대를 담담하게 풀어나간다.
그 많던 석과는 누가 다 먹었을까? 여기서 석과(碩果)는 ‘씨 과실’‘종자로 쓰이는 곡식’을 의미한다. 옛날 시골 창고에는 내년 농사에 쓰일 볍씨와 보리, 감자와 고구마 등이 귀하게 보관돼 있었다.

아무리 배고프고 어려워도 내년 농사에 쓰일 종자나 ‘씨 과실’(석과)을 먹어 없앨 수는 없는 일이다.

주역에 나오는 ‘씨 과실은 먹지 않는다’, 석과불식(碩果不食)을 우리 국민에게 가장 널리 퍼트리신 분은 며칠 전 돌아가신 신영복 선생이다. 그의 옆서 그림 중에서도 ‘석과불식’이 특히 눈에 띈다. 앙상한 나목에 하나 매달린 빨간 감이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오래오래 가슴에 남아 있다. 신영복 선생의 마지막 책이 된 ‘담론’의 마지막 강의도 ‘석과불식’이다.

아무리 어렵고 고달픈 절망의 시절일지라도 마지막 희망을 버리지 말라고 당부한다. 20년 20일의 수형생활 와중에 교도소의 손바닥만한 창문으로 새어 들어오는 작은 햇볕이 바로 희망이었다고 하면서, 우리 시대의 젊은이들이 희망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격려한다.

지금의 시대에는 사람이 희망이고, 사람이 ‘씨 과실(석과)’이라는 것이다. “욕망과 소유의 거품, 성장에 대한 환상을 청산하고, 우리의 삶을 근본에서 지탱하는 정치․경제․문화의 뼈대를 튼튼히 하고, 사람을 키우는 일이 석과불식의 교훈이고 희망의 언어”라면서 마지막 강의를 마무리했다.

요즘 정년 연장과 임금피크제를 둘러싼 논란이 대한민국을 온통 뒤덮고 있다. 성과가 현저하게 떨어지는 직원에 대해서는 해고가 가능하도록 취업규칙을 변경할 수 있다는 정부의 지침이 발표됐다.

정부는 실업자 대상의 사회안전망을 튼튼하게 보완해 기업 차원의 유연성과 함께 사회 차원의 안정성을 높여줘야 한다.

국회에서는 관련 법안에 대한 여야의 타협과 개정안 통과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물론 조만간 결론이 날 것으로는 보인다.

이제 그 지침을 다루는 기업의 최고경영자에게 공이 넘어 왔다. 직원을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중요하다. 기업이 성장하고 수익을 내는데 있어 가장 핵심적인 자원은 사람, 설비, 기술이다. 그런데 기술을 개발하고, 설비를 다루는 것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다.

신영복 선생의 말처럼, 사람이 ‘씨 과실’(석과)이 되는 것이다. 최고경영자가 사람, 즉 직원을 함부로 다루면 그 기업은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하며 오래가지 못한다.

일본 교토에는 천년경영을 하는 인절미 떡집 ‘이치와’(一和)가 있다. 이처럼 천년을 버텨온 기업의 공통점 중 하나는 사람이다. 일하는 직원을 귀하게 여기고, 고객을 진짜 귀하게 여기는 평범한 진리로 천년을 버텨왔던 것이다.

또 하나는 누리과정을 둘러싼 논란이다. 아직 학교에 들어가지 않은 어린아이들을 둘러싸고  비용을 지역의 교육청에서 부담할 것이냐, 중앙정부에서 부담할 것이냐를 놓고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앞으로 30년, 100년 이 나라를 이끌어갈 진짜 ‘씨 과실’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를 두고 고민을 해도 부족한데, 비용을 누가 댈 것인지를 두고 갑론을박하고 있다.

결국은 다 나랏돈이고 국민의 세금이다. 어느 나라에서는 유치원교사도 공무원에 준하는 대우를 하면서 아이들을 얼마나 잘 키울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다.

최저임금 수준의 열악한 처우에 시달리는 교사들이 과연 우리나라의 미래 ‘씨 과실’인 아이들을 얼마나 알뜰살뜰 키워줄 수 있을지 걱정이다.

지방자치와 지방재정에 관한 문제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야겠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이 문제를 풀어야 할 여야의 정치인들이 ‘처삼촌 묘에 벌초하듯’ 수수방관하고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마음이 다 콩밭(선거)에 가 있어서 그런가? 저출산 고령화 같은 고담준론을 논할 게 아니라, 지금 당장 아이들 육아문제부터 편안하게 풀어줘야 한다.

10년, 20년 후 우리 기업이나 나라 경제가 ‘그 많던 석과는 누가 다 먹었을까’ 라면서 사람이 없고 인재가 없다면서 후회하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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