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이동재 유선준 기자 =법무부의 사법시험 폐지 유예 발표로 파행 위기에 놓였던 제5회 변호사시험이 지난 4일 큰 차질없이 진행됐지만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출신 변호사와 로스쿨생들의 불만은 여전하다.
사시가 2017년을 끝으로 폐지되는 것은 국회가 제정한 변호사시험법에 규정된 일임에도 법무부가 사시 폐지 유예와 이에 대한 번복을 발표하면서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켰다는 판단에서다.
범 로스쿨 측은 대한변호사협회 등 변호사단체와의 관계도 날카롭게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대한변협과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사시 존치 법안을 통과시키라고 촉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의 모임인 한국법조인협회(이하 한법협)는 대한변협과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사법시험 존치를 위해 법무부 등에 전방위 입법로비를 했다고 주장하며, 하창우 대한변협 회장 등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는 상태다.
사시 존치를 둘러싼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수면 아래 잠복해 있는 갈등이 폭발, 심각한 사태로 번질 것이라는 우려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미 로스쿨 측과 사시 존치 주장 측의 대립은 돌아오지 못할 선을 넘은 상태라는 관측도 적지 않다.
◆로스쿨 출신들 "사시 폐지 유예, 법무부 권한 밖"
논란의 중심에 있던 제5회 변호사 시험은 지난 4~8일 치러졌다. 변시 일정에 논란이 생긴 건 지난해 12월 법무부의 사시 4년 유예 발표가 나오면서였다.
법무부는 로스쿨 제도가 정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을 개선할 필요성이 있다는 판단에서 이같은 발표를 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자 전국 25개 로스쿨 원장들이 모인 로스쿨협의회는 즉각 반발했다. 사시 존치론자들을 '떼쓰는 자'에 비유하면서 "법무부가 떼쓰는 자들에게 떠밀려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했다"고 비난했다.
로스쿨 재학생 1886명도 응시표를 불태우는 등 변시 거부를 했으며, 로스쿨 교수들은 변시 출제 거부 등을 선언했다.
대법원까지도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자 법무부는 하루 만에 한발 물러섰다. 대법원이 협의체 구성을 제안하면서, 로스쿨 교수들이 변시 출제 거부를 철회하고 로스쿨 응시생 1000여 명도 다시 시험을 치르기로 했다.
하지만 예정대로 변시가 진행됐음에도 로스쿨 출신 변호사와 학생들은 아직까지 김 장관과 법무부의 태도에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사시 폐지가 법에 규정된 일임에도 사시 폐지 유예를 내세워 갈등을 조장한다는 이유에서다.
전국로스쿨학생협의회 간부 출신인 김 모 변호사는 "바뀐 정책에 대해 사전에 설명도 안하고 법무부가 사시 폐지 유예를 발표한 것은 로스쿨 출신 모두를 적으로 돌린 행위"라며 "법조인들을 아울러야 할 김현웅 법무부 장관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향후 학생협의회는 김 장관의 퇴진을 촉구하는 등 본격적인 단체행동에 나설 계획이다. 학생협의회의 한 간부는 "변시는 끝났지만 법조계 분란을 조장하는 김 장관과 법무부에 대해 단체 시위를 할 예정"이라며 "사시 존치의 가능성이 있는 한 계속해 투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한변협의 사시 존치 주장...로스쿨 출신들과의 갈등 격해져
법무부의 사시 폐지 유예 발표를 가장 환영했던 측은 대한변협이었다. 대한변협은 성명을 내고 “국민의 뜻은 한시적 사시 존치가 아닌 조건없는 사시 존치”라며 “사시 존치 법안을 원안대로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서울변회도 성명을 통해 "사시 폐지 이유로 주장되는 연수원 기수문화, 사법 기득권 유지는 이미 사라진 과거의 구습에 대한 비판에 불과하다. 로스쿨 체제에서 오히려 부정한 청탁이 만연하고 신분세습 문제가 확대되고 있다"며 “국회는 망설이지 말고 사시 존치 법안을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측의 극한 대립은 하 대한변협 회장이 공개적으로 ‘희망사다리론’을 내세우면서 더욱 증폭됐다. 하 회장은 “사시는 희망의 사다리다. 돈 없는 집안 자녀도 판사·검사·변호사가 될 수 있도록 사시가 존치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희망사다리론’은 사시 존치론자들의 강력한 근거다. 사시가 ‘개천용'(개천에서 난 용)을 위한 제도라는 각자의 서사를 내세운다. 지난해 12월10일 경기도 과천 정부청사 앞에서 삭발식을 하며 사시 존치를 주장한 고시생들도 자신의 ‘흙수저’ 처지를 강조했다.
이에 대해 로스쿨 출신 변호사와 로스쿨 학생들은 "사시와 로스쿨 출신을 가리지 않고 모든 변호사를 대변해야 하는 대한변협이 한쪽만 비호하는 단체로 전락됐다"고 맹비난했다.
한법협은 "입법 로비를 자행해 온 하 회장이 관련 정보를 요청한 감사의 요구를 묵살하고 압력을 가했다"며 하 회장을 업무방해죄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고발한 상태다.
최근 들어서는 익명의 로스쿨 모임이 대한변협에 보낸 편지 내용을 놓고 진위 논란도 일고 있다.
하 회장이 지난 13일 밤 공개한 편지는 '로스쿨 개혁을 주장하는 로스쿨생 모임'이라는 명의로 돼 있고 주된 내용은 '사시 존치'와 '로스쿨생의 사시응시'를 가능하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로스쿨 출신의 박 모 변호사는 "익명의 로스쿨 모임이 사시 존치를 원하는 내용의 편지를 대한변협에 보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며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은 대한변협이 로스쿨생을 가장해 편지를 조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법조계 "사시 폐지 유예 발표로 파벌싸움 심화...법무부 나서지 말아야"
김 장관의 사시 폐지 유예 발표로 사시 출신과 로스쿨 출신 간 파벌싸움이 기존보다 더 심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법무부의 섣부른 발표로 인해 두 세력이 화합할 수 없을 만큼 골이 깊어졌다는 것이다.
아직 법조계에 로스쿨 출신 기피현상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고시생들이 본인들을 흙수저라는 등 '수저계급론'까지 거론해 더 격한 감정다툼으로 비화됐기 때문이다.
2017년 사시를 준비하는 고려대 이 모 학생은 "일부 로스쿨 출신들이 업무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서 사시 출신들의 기득권을 논하는 것은 분수에 넘치는 일"이라며 "사시 출신들을 폄하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반면 이번 변시를 치른 서울대 출신 정 모씨는 "이미 로스쿨 제도가 정착된 상황에서 사시 존치를 찬성하는 것은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라며 "로스쿨 출신들을 배척하는 것 자체가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시도"라고 반박했다.
법조계 인사들은 두 세력간 갈등을 없애기 위해서는 더이상 법무부의 관여가 있으면 안된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오수근 로스쿨협의회 이사장은 “법무부의 입장 발표가 교육부, 대법원과 조율되지 않았다는 것은 비정상적”이라며 “범정부기구를 통해 객관적으로 검증하면 정책적으로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는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김 모 부장판사도 "로스쿨 제도가 시행되는 상황인 만큼 법무부의 이번 발표는 불필요했다"며 "법무부가 나서기보단 범정부기구를 통해 의견들을 조율하고 정책을 선택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