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오후 6시 50분께 제주공항에서 비행기 이착륙을 지시하는 관제탑과 여객기 사이에 교신 이상이 생겼다. 지지직거리는 잡음만 날 뿐 여객기 응답이 들리지 않았다. 인근 ‘접근관제소’도 마찬가지였다. 접근관제소는 관제탑보다 더 멀리서 접근하는 비행기를 통제하는 시설이다.
이에 따라 제주공항의 관제탑 4곳과 인근 관제소 6곳의 통신장비가 모두 먹통이 됐다.
모든 장비에 고장이 나면서 1시간 넘게 관제탑과 조종사 간의 교신이 끊겼다. 항공기 77편의 운항이 지연됐고, 2대는 아예 회항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또한 항공기 12대는 무전기와 관제탑 불빛에만 의존해 이착륙하는 아찔한 상황도 이어졌다. 이처럼 통신장비 고장으로 관제탑과 항공기의 교신이 모두 끊긴 것은 국내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제주공항 자체 대응 매뉴얼에서도 큰 문제점이 드러났다.
주장비 오류 때문에 예비 장비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관제탑은 즉시 예비·비상 통신장비를 가동시키려 했지만 허사였다. 게다가 담당자들은 예비·비상 통신장비 사용법을 제대로 몰라 허둥대기만 했다.
또 ‘주장비가 고장 나면 예비로 돌리고, 비상장비 순서로 교신한다’는 규정에 따라 비상 통신장비인 휴대용 무전기를 사용했지만 이마저도 먹통이었다.
당시 제주공항에는 1분 30초마다 비행기가 이착륙할 예정이었다. 운이 좋아 대형사고가 발생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다.
제주공항 관계자는 “자칫 비행기 충돌 사고가 날 수 있어 즉시 이착륙을 전면 중단시켰다”고 밝혔다.
이날 50여분이 지난 오후 7시 41분께부터 예비·비상 장비를 통해 여객기와 교신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수리를 위해 주장비의 전원을 끈 순간이었다. ‘통신두절’의 원인은 주장비를 비롯해 예비·비상 장비 모두 같은 주파수로 통신한 데 따른 전파 간 충돌인 ‘간섭 현상’ 때문이었다.
하지만 제주공항 매뉴얼 자체에는 그런 내용이 없었다. 관제와 시설관리 요원들은 이런 상황에서 ‘주장비를 꺼야 한다’는 간단한 조치를 못해 몰라 1시간 가까이 공항을 전체를 마비시키는 초유의 사태를 일으켰다.
14일 한국공항공사는 이 매뉴얼을 만들어 전국 공항에 비치했다.
이날 비상상황이 해소되자 9시 김포 출발 아시아나항공 비행기를 타고 제주에 도착한 승객 조모씨(50)는 “티켓 발권 시 제주공항 관제탑 통신두절로 회항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정상 운항을 한 우리 비행기는 제주공항에 착륙하고도 10분 이상 머물러 있다 공항청사로 들어올 수 있었는데 아찔한 순간이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