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배인선 기자 =중국의 신 경제권 구상인 ‘일대일로(一帶一路)’가 세계 경제 화두로 떠올랐다. 일대일로는 육상에서는 중국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까지, 해상에서는 동남아와 아프리카 대륙을 거쳐 유럽까지 연결하는 신 실크로드 경제권을 건설하겠다는 전략이다. 21세기 신(新)실크로드라고 불리는 일대일로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야심차게 추진하는 국가 대계(大計)다.
현재 중국 31개 성(省)·자치구·직할시 중 3분의 2 이상이 일대일로 사업을 올해 중점 업무 계획에 포함시켰을 정도로 각 지방정부의 일대일로 참여 열기는 뜨겁다.
최근 중국 관영 영자지 차이나데일리가 전 세계 13개국에서 아주경제를 포함, 17개 매체를 초청해 ‘일대일로로 보는 장쑤성’ 행사를 가졌다. 일주일간 난징(南京), 쉬저우(徐州), 롄윈강(連運港), 쑤저우(蘇州) 등 장쑤성 4개 도시를 둘러보며 현지 정부와 기업들의 일대일로 참여 열기를 체험했다.
△도시마다 인프라 건설 ‘속도’
‘육 해상 실크로드가 만나는 교차점’, ‘유라시아 경제벨트 중추도시’ 등 일대일로 전략을 추진하는 장쑤성 도시들이 내걸고 있는 캐치프레이즈다. 각 도시들은 각자에 맞는 전략적 포지셔닝을 세우고 일대일로에 ‘올인’하는 모습이었다.
난징시 북쪽에 위치한 ‘장베이신구(江北新區)’. 창장(長江)의 북쪽에 위치한다 하여 이름 붙여졌다. 총 면적 788㎢ 규모의 장베이신구는 창장 남쪽에 비해 발전이 상대적으로 더뎠다. 하지만 올 7월 국무원이 13번 째 국가급 신구로 지정하면서 날개를 달았다. 일대일로와 창장 경제벨트라는 국가전략을 추진하는 중추 역할을 맡게 된 것.
지난 10일 방문한 장베이신구는 허허벌판이었다. 하지만 길게 뻗은 도로엔 레미콘 굴착기 차량이 쉴새 없이 지나다녔다. 이제 막 착공에 들어간 공사판도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지하에서도 전력·통신·수도관과 같은 인프라 설비 공사가 한창이었다.
장베이신구 관계자는 “최근 착공한 각종 프로젝트만 50개로 총 투자액이 1000억 위안이 넘는다”고 말했다. 그는 10년 후 완공이라는 장기 계획을 목표로 건설 중이라며 “지금은 황무지지만 5년 후엔 커다란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이곳엔 인근 도시를 잇는 7개 주요 고속도로가 깔리고 총 구간길이 200㎞가 넘는 10여개 노선의 지하철이 운행된다. 난징시는 이곳에서 전자IT·생물바이오등 신흥전략산업을 적극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항구도시 롄윈강은 최근 글로벌 해운업계 불황 속에서 일대일로의 기회를 활용하고 있었다. 지난 해 5월엔 중국과 카자흐스탄이 8개월간 합작해 건설한 중국-카자흐스탄 물류합작기지 1기 프로젝트가 본격 가동됐다. 시진핑 주석이 일대일로를 제창한 후 최초로 완성된 외국과의 합작 프로젝트다. 시 주석과 카자흐스탄 대통령이 보는 앞에서 직접 체결된 이 프로젝트는 투자액만 30억 위안이 넘게 들었다.
리커창(李克强) 총리 지시로 지난 2013년부터 이곳엔 22㎢ 규모의 ‘상하이협력기구(SCO) 국제물류단지’도 한창 건설 중이다.
인근 쑤저우도 예외는 아니다. 이미 1990년대 싱가포르와의 협력을 통해 건설한 공업단지를 건설한 쑤저우는 일찍히 글로벌화에 박차를 가해왔다. 쑤저우는 이미 싱가포르-중국간 위안화 특구로 지정돼 위안화 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쑤저우의 타이창(太倉) 항구는 창장 최대 컨테이너 항구로 올라선 지 오래다. 올해 화물 물동량은 2억 t을 돌파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장쑤성에서는 아시아는 물론 중동·유럽국가까지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기 위한 '동맥' 연결 작업도 속속 이뤄지고 있다. 롄윈강에서는 신장(新疆)자치구를 거쳐 카자흐스탄 알마티까지 이어지는 화물철도가, 쑤저우는 네이멍구(內蒙古) 만저우리(滿州里)를 거쳐 폴란드 바르샤바로 향하는 화물철도도 개통했다.
일각선 과도한 일대일로 참여가 중복 투자나 도시간 과열 경쟁 부작용을 낳을 것을 우려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장쑤성 발전개혁위원회 천전닝(陳震寧) 주임은 “중앙정부 차원에서 장가오리(張高麗) 부총리를 조장으로 ‘일대일로 건설 영도소조’를 마련했을 뿐만 아니라 장쑤성내에도 별도로 일대일로 전담기구를 만들어 지속적으로 의견을 조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불황 돌파구는 '일대일로'
중국 경기둔화 속에서 현지 기업들도 일대일로의 기회를 포착해 동남아는 물론 중앙아시아, 유럽 등 해외 각지로 사업을 뻗어나가는 데 주력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난징에 소재한 중국 유통공룡 쑤닝(蘇寧)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대일로 취재진을 직접 맞이한 쑨웨이민(孫爲民) 쑤닝 부총재는 “동남아 무역 플랫폼을 건설해 일대일로 전략의 교두보를 마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미 동남아와 국경을 접한 광시(廣西)자치구 난닝(南寧)에 7만㎡ 물류 기지도 건설 중”이라며 "인도네시아에서부터 태국·말레이시아·베트남·미얀마에 이르기까지 동남아에서 국경간 전자상거래 사업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는 현지에서 직접 공수한 태국의 말린 망고, 베트남의 목제공예품, 말레이시아 커피, 싱가포르 보석 등 동남아 특산품을 모두 쑤닝 전자상거래 플랫폼에서 만나볼 수 있다는 것.
국유 중장비기업 쉬궁(徐工)그룹도 업계 불황을 돌파하기 위해 일대일로 기회를 적극 활용하고 있었다. 일대일로의 핵심은 관련국에 철도·항만·도로 등 인프라를 구축해 상호 연결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해외 인프라 건설 붐이 일면 고질적인 공급과잉 문제를 해소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쉬궁그룹은 일대일로 전략에 발맞춰 이미 중앙아시아·동남아·유럽 등 65개국에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브라질에 세계 최대 공장을, 독일엔 최대 R&D 기지도 건설했다. 현재 쉬궁그룹의 수출액의 75%가 일대일로 관련국이 차지하고 있다. 쉬궁그룹은 1~2년내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에 공장을 건설하고 러시아·스리랑카·캄보디아 등에 부품센터도 설립할 예정이다. 쉬궁그룹 쉬샤오후이(徐筱慧) 총경리조리는 “이를 통해 현재 25%에 머물고 있는 해외사업 매출 비중을 더 높이 끌어올릴 것”이라고 자신했다.
광섬유기업 헝퉁(亨通)그룹도 마찬가지다. 이미 전 세계 30개 지역에 대표처를 두고 있는 헝퉁그룹은 일대일로 발전 전략에 따라 주변국 인프라 건설 프로젝트에 적극 참여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글로벌 555 계획’도 수립했다. 헝퉁그룹 왕즈젠(王志堅) 부총재는 “5년내 현재 15% 정도인 해외사업 비중을 50%까지 끌어올릴 것”이라며 “동시에 해외 자본 비중도 50%, 해외 인재 채용도 50%지 끌어올릴 것”이라고 포부를 전했다.
△'문명의 통로' 실크로드의 부활
현지에서 목격한 일대일로는 단순한 경제 프로젝트만은 아니었다. 그 안에는 동·서양 문명 교류의 통로였던 고대 실크로드를 21세기 일대일로라는 새로운 차원으로 부활시켜 각국 문화를 연결하자는 뜻도 담겨있었다.
이를 위해 중국이 내세우는 인물은 600여년 전 명나라 때 정화(鄭和) 제독이다. 정화가 함대를 이끌고 일곱 차례에 걸쳐 동남아시아와 인도, 아프리카를 횡단하면서도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평화우호의 씨앗을 뿌렸음을 강조한다. 중국이 일대일로에서 말하는 해상 실크로드는 바로 600여 년 전 정화가 개척한 길이기도 하다.
난징은 정화가 이끌었던 함선이 제작된 조선소가 위치했던 곳이다. 조선소 유적지는 현재 국가급 문물보호 단위로 지정됐다. 최근엔 이곳에서 600여년 전 정화의 함대도 복원했다. 길이 63.25m에 넓이 13.8m. 1300t인 이 배는 정화가 이끌었던 원정대의 함대 사이즈를 본 따 만들었다.
난징이 정화의 함대를 제작한 곳이라면 쑤저우는 정화의 함대가 출발한 곳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쑤저우는 지난 2008년 ‘정화공원’을 조성했다. 총 122ha 면적의 거대한 공원에는 총 18m 높이의 거대한 정화 동상과 함께 거대한 정화의 보선(寶船)도 전시돼 있다. 총 길이가 71.1m, 넓이 14.05m로 난징의 배보다 좀 더 크다.
난징엔 이외에도 과거 해상 실크로드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난징은 일대일로 바람을 타고 인근 도시들과 함께 공동으로 해상 실크로드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도 준비 중이었다. 허윈아오(賀雲翺) 난징대 교수는 “해상 실크로드 유네스코 등재를 위해 동남아 등 주변국과의 협력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다시 말해 중국은 일대일로가 단순한 경제패권 전략이 아닌 주변국과의 문화교류의 통로임을 내세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