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노승길 기자 = 이제 한 달 여밖에 남지 않은 올해의 한국경제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최악의 수출부진을 기록했으나 내수가 살아나며 이를 상쇄시켰다'로 평가할 수 있다.
한국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했던 수출이 5년 만에 경제성장률을 깎아 먹는 신세로 전락했지만 내수가 살아나면서 지난 3분기 경제성장률이 2014년 1분기 이후 처음으로 1%대를 회복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큰 것도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각종 단기 경기부양책의 '약발'이 다하는 내년이 되면 민간소비가 급감하는 '소비절벽'이 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 수출 최악에도 내수로 버틴 한국 경제
세계 경기 둔화로 올해 수출은 10개월 연속 마이너스라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았다.
10월 수출액은 434억700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15.8%나 줄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직후인 2009년 8월(-20.9%) 이후 6년 만에 최대 낙폭이다.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교역량은 수출 4402억 달러, 수입 3674억 달러로 8076억 달러에 그쳤다. 이에 따라 4년 연속 '무역 1조 달성'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
올해 상반기 순수출(수출-수입)의 성장기여도는 -0.9%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3분기 역시 -0.7%를 나타내 올해 3분까지 순수출 기여도는 -1%포인트에 달했다.
순수출의 성장기여도는 2010년 -1.4%로 떨어지고서 2011년 0.9%, 2012∼2013년 각 1.5%, 2014년 0.5%로 플러스를 기록해왔다.
최악의 수출 부진에도 불구하고 3분기 국내총생산(GDP)은 전 분기 대비 1.2% 증가해 6분기 만에 1%대 성장률을 회복했다.
소비와 투자가 반짝 회복됐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가 이끄는 소비와 투자가 3분기 경제성장률을 0.8~1.0%포인트 끌어올렸다. 이어 민간소비가 0.6%포인트의 성장률 기여도를 보였다.
3분기 정부 부문의 성장기여도가 눈에 띄게 높아진 것은 8월부터 추가경정예산을 본격적으로 집행한 데 따른 것이다.
또한 민간소비 역시 개별소비세 인하,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 등 정부의 소비 진작정책이 추석 연휴 기간과 맞물리며 전 분기보다 크게 늘었다.
정부의 인위적인 경기부양책이 어느정도 효과를 본 셈이다.
◆ 단기미봉책 '약발' 다하면 내년 소비절벽 우려
문제는 내년이다. 추경과 개별소비세 인하 등 정부의 각종 경기부양책으로 소비심리가 메르스 이전 수준으로는 회복됐지만 성장을 짓누르는 구조적인 요인과 열악한 대외환경은 바뀐 것이 없기 때문이다.
정부 부양책의 '약발'이 효력을 다하는 내년이 되면 민간소비가 급감하는 '소비절벽'이 올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또한 정부의 소비 진작책을 대체할 카드도 마땅치 않다.
올해 대규모의 추경을 편성한 데다 규제완화·투자촉진 등 소비진작을 위한 당근을 모조리 써버렸기 때문이다.
이에 재정을 풀어 살린 경기부양의 효과는 일시적이고, 이로 인해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내년에 처음으로 40%대로 오르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는 최근 발표한 '동향과 전망' 보고서에서 "소비진작을 위한 정책이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가계의 소득 여건과 구조적인 문제를 고려할 때 소비가 빠르게 회복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라며 "오히려 정책 일몰 이후 소비 절벽이 우려된다"고 경고했다.
실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008년 12월부터 2009년 6월까지의 개별소비세 인하로 자동차판매가 증가해 2009년 2분기 소비가 3.3%나 증가했지만, 정책이 끝난 뒤인 3분기에는 소비 증가율이 1.0%로 급락한 바 있다.
2012년 9∼12월에도 개별소비세 인하가 있었으나, 다음 해 1분기 민간소비는 마이너스 증가율(-0.1%)로 전환했다.
소비를 짓누르는 구조적인 요인들이 개선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하고 있다는 점은 전망을 더욱 어둡게 만든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고령화에 따른 노후 대비로 가계의 소비성향이 큰 폭으로 하락하는 추세"라며 "전세가격 상승에 따른 주거비 부담 증가, 가계부채 증가도 소비 여력을 제약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해외투자은행(IB)인 노무라 역시 소비의 근본적 문제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노무라는 "2013년 이래 30~54세의 핵심소비인구의 감소와 베이비붐 세대의 조기퇴직 증가, 기대수명 연장에 따른 인구구조적인 문제로 소비지출성향이 하락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수출 부진에 따른 고용 감소, 가계부채 증대 및 주택가격 상승에 따른 구매력 감소, 비정규직 및 저임금 일자리비중 증가와 높은 청년실업률에 따른 장기적인 소비제한 등이 한국의 장기적인 위험요인"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