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정주영·이건희·박태준과의 인연 또는 악연

2015-11-22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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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임기 내내 재벌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만은 분명하다.

강건과 온건, 유화 등을 적절히 사용했다는 평가도 있지만, 그보다는 재벌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김영삼 정부의 재벌관은 ‘고추장론’으로 요약할 수 있다. “고추장에 대한 식품위생 규제는 한국에만 있다. 고추장은 한국 사람만 먹으니까. 재벌정책도 마찬가지다. 총수 한 사람이 50~60개 기업의 경영권을 거머쥐고 전횡하는 재벌이 한국 외에 도대체 어디 있는가?”라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들은 김영삼 정부 시절 재벌정책은 무서웠다고 조심스럽게 과거를 회상한다.

1992년 말 대선 직후 김영삼 당선자는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에서 당선 축하인사를 하겠다며 면담을 요청하자 거절했다. 반면 중소기협중앙회(현 중소기업중앙회)의 요청은 받아들였다. 이 사례는 김 전 대통령의 재계관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특히, 공정거래위원회와 국세청은 김 전 대통령이 콕 찍은 특정 재벌 총수에 길들이기 수단으로 활용됐다.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대표적이다. 김 전 대통령이 당선된 제14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대립각을 세운 이유 때문에 선거가 끝난 뒤인 1993년 정 명예회장은 비자금 조성 혐의 등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고, 정계은퇴는 물론 경영일선에서도 사실상 손을 떼야만 했다. 또한 현대그룹은 김 전 대통령 재임기간 내내 사업 추진을 제약 받았다.

또한 정 명예회장이 회장을 지냈던 전경련도 비슷한 사정을 겪었다. 정부 정책에 반하는 의견은 낼 수 없었고, 그런 분위기가 들면 호출을 받아 혼쭐이 나야했다.

김 전 대통령 재임 기간 전경련 회장을 역임했던 최종현 SK그룹 회장은 1995년 2월 김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신경제회의에서 “대기업은 선단식 경영으로 중소기업의 입지를 좁히지 말라”고 말한 데 대해 2월 14일 “경제력 집중 억제는 세계화에 어긋난다. 문어발이니 업종 전문화니 하는 것은 에디슨이 전구 만들 때 이야기다. 문어발을 하든 말든 규제하는 나라가 어디 있는가”라는 의견을 냈다. 이틀 뒤인 16일 국세청이 SK그룹에 대해 세무조사를 시작했고 17일에는 공정위가 부당 내부거래 조사에 들어갔다. 최 회장은 16일 홍재형 경제부총리를 찾아가 사과해야만 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현 삼성전자 회장)은 임기 초반만 해도 승용차 사업 진출 승인을 받아 김영삼 정부와 밀월관계를 맺었다는 소문까지 났다. 하지만 그는 중국을 방문중이던 1995년 4월 13일 베이징 특파원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우리나라는 행정력은 3류급, 정치력은 4류급, 기업 경쟁력은 2류급이다”고 한 발언이 청와대에 흘러들어간 뒤 4개월 동안 모든 추진 사업이 중단될 정도로 강력한 제재를 받았다. 이 일로 김 전 대표와 이 회장은 틀어졌고, 이듬해인 1996년 8월 이 회장은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 연루 혐의로 유죄를 인정받아 서울지법에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포항제철(포스코)을 떠난 상태였으나 포항제철 설립자였던 박태준 전 국무총리도 김 전 대통령으로부터 박해를 받은 기업인으로 꼽힌다. 대선에 출마한 김 전 대표가 도움을 요청했으나 이를 거부하자 당선 뒤 세무조사를 받는 등 고초를 당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오랜 기간을 외롭게 지내야 했다.

김 전 대표들은 이들에게 채찍과 함께 당근도 제시했다. 하지만 재계는 이 때부터 이어진 김대중 정부 시절까지의 기간이 ‘가장 어두운 흑역사’였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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