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노태우 전 대통령 시절 3당합당을 해 ‘변절자’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은 박정희ㆍ전두환 군사독재 정권 시절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우리나라의 반독재 민주화 투쟁을 이끌었다.
물론 장기간 투옥에 사형선고까지 당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군사독재 정권의 탄압을 더 혹독하게 받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도 군사독재 정권으로부터 가혹한 탄압을 받았다.
박정희 유신독재 정권 시절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의원직을 잃기도 했고 이것이 박정희 유신독재 정권의 붕괴를 가져오는 한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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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79년 5월 30일 신민당 총재가 된 김영삼 전 대통령은 총재가 되자마자 ‘민주회복’을 기치로 내걸고 박정희 유신독재 정권과 정면 대결을 벌였다.
이런 가운데 김영삼 총재는 1979년 10월 뉴욕타임스지를 통해 미국에 박정희 유신독재 정권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이를 빌미로 당시 공화당과 유신정우회 의원들은 “헌정을 부정하고 사대주의 발언을 했다”며 김영삼 총재 의원직 제명안을 제출해 1979년 10월 4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이는 박정희 유신독재 정권에 대한 국민적 반발을 극대화시키는 계기가 됐고 결국 부마항쟁과 박정희 전 대통령 암살(10·26사태)로 이어져 박정희 유신독재 정권은 붕괴됐다.서거 서거 서거 서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