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열 칼럼] 그녀는 예뻤다

2015-11-11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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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열 (현대경제연구원 정책조사실장)

김동열 (현대경제연구원 정책조사실장)


그녀는 예뻤다. 훌륭한 부모 밑에서 자랐고, 미모도 출중했으며, 런던으로 유학을 가서 멋진 영국 남자와 결혼해 아들 둘을 낳았다. 여기까지 들으면 모 방송사의 수목 드라마 ‘그녀는 예뻤다’에 나오는 여주인공 이야기라고 해도 믿을 것이다.

송구스럽지만 그녀는 7학년 1반(1945년생)이다. 그녀의 아버지 아웅산 장군은 영국과 일본의 식민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미얀마의 독립 영웅이었다.
건국전인 1947년에 정적에 의해 암살당했다. 자연스레 아웅산 장군과 김구 선생의 이미지가 겹쳐진다. 그녀는 세 살의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고 영국으로 떠났고, 마흔 세살의 나이에 노모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고국 미얀마로 들어갔다.

미얀마의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다 군부세력에 의해 가택연금을 당했다. 1991년 노벨평화상을 받았고, 얼마 전 끝난 선거에서 압승이 예상되는 미얀마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을 이끌고 있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10일 현재 상·하원 선출직 491석 중 88석의 개표가 완료된 가운데 NLD가 78석을 차지했다. 집권당인 통합단결발전당(USDP)은 5석을 얻는 데 그쳤다.

이런 추세라면 NLD가 상·하원 과반의석(329석)을 무난히 확보해 1962년 군부 쿠데타 이후, 53년만에 순수 민간정부를 꾸리게 될 전망이다.

그렇지만 그녀는 대통령이 될 수 없다. 다수당의 대표가 되더라도 그렇다. 미얀마 군부가 통과시킨 헌법에 따르면 배우자나 자녀가 외국인 신분인 경우 대통령이 될 수 없는데, 순전히 아웅산 수치 여사를 위한 조항이다. 국회의원의 25%를 군부가 지명하도록 돼 있다. 이런 헌법을 고치려면 75%가 찬성해야 한다. 개헌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처럼 미얀마의 과거는 우울했다. 그런 미얀마에도 변화의 봄이 오고 있다. 아웅산 수치 여사가 중심에 있다. 소수의 군부 엘리트들이 권력을 독점하는 현재와 같은 국정 운영으로는 나라가 발전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향후 미얀마의 미래를 무조건 낙관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정치적 구심력이 있고, 민주화에 대한 국민의 열망이 더해진다면 우여곡절은 있을지라도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모든 국민의 열정을 담아내고, 공평한 참여 기회를 제공하고, 부패를 방지하고, 투명한 행정을 펼치는 방향으로 정치가 변화할 것으로 믿는다. 이렇게 포용적인 제도와 정책을 펼치면 결국 미얀마의 경제는 발전하고 국민소득도 올라갈 것이다.

포용적 정치·경제 시스템을 구축할 경우, 가난한 나라가 번영의 길로 올라섰다는 성공 사례는 무수히 많다.

1966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아프리카의 보츠와나도 그 중 하나다. 인구는 200만에 불과하지만 면적은 한반도의 2.6배로, 프랑스보다 조금 크다.

보츠와나는 다이아몬드 매장량 세계 3위의 자원부국이다. 그러나 리비아, 가나, 콩고 등 다른 아프리카의 자원부국처럼 ‘자원의 저주’나 ‘네덜란드 병’에 걸리지 않았다.

자원수출로 인한 재원을 별도의 기금에 독립적이고 안정적으로 관리했다. 이를 교육과 인프라 등에 성공적으로 투자해 경제발전과 국민소득 향상에 성공했다.

정치는 민주적이고, 행정은 투명하며, 정책과 제도는 예측 가능하고 일관성이 있다. 예를 들어 국제투명성기구(TI)가 2014년에 발표한 부패인식지수(CPI) 순위를 보면 보츠와나는 31위로 한국의 43위보다 우수하다.

보츠와나의 구매력기준 1인당 GDP는 1만6000달러에 달한다. 무디스 기준 국가신용등급은 A2로 6등급이며, 한국(Aa3, 4등급)과 큰 차이가 없다. 헤리티지재단이 평가한 경제자유화지수 역시 36위로 한국(29위)에 조금 못 미치지만, 아프리카에서는 단연 돋보이는 성적이다.

과거 제국주의 시대에 열강의 식민지였지만 자원이 많아 경제발전의 가능성이 높은 나라들은 많다. 하지만 민주화와 경제발전에 성공한 나라는 많지 않다. 보츠와나의 사례를 통해 많은 아프리카와 중남미의 자원 부국이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다.

미얀마도 마찬가지다. 풍부한 자원과 노동력을 활용하고, 정치와 경제를 포용적으로 변화시켜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동시에 이룩한 나라로 세계에 널리 알려지기를 희망한다. 우리나라처럼 말이다. 그녀의 스토리가 해피엔딩으로 끝나기를 바란다. 그러면 미얀마의 역사에 그녀의 기록이 예쁘게 그리고 오래 남아 있을 것이다. 인생은 짧고, 역사책도 짧지만 역사는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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