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한 언론의 정부 당국의 강제 합병 보도에 한바탕 곤욕을 치룬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주가가 각각 4.76%, 13.78% 급락하며 양사가 이날 하루에만 허공에 날린 돈(시가총액 감소분)이다.
주가 급락을 불러일으킨 주체가 시세차익을 노린 투기꾼이 아닌 정부 당국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앞서 정부는 좀비기업 정리라는 명분을 앞세워 특정 업종과 기업을 언급하면서 대대적인 기업 구조조정을 예고한 바 있다.
그런데 정부의 산업구조 개편작업은 출발도 하기 전에 신뢰를 잃고 있다. 해당 부처를 한 자리에 모은 범정부 차원의 협의체가 구성되자마자 정부발 살생부(퇴출 및 인수·합병 대상 기업 명단)가 퍼졌다. 이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해당 기업에 피해를 입히는 루머가 끊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기업은 국가경제를 망친 주범이라는 낙인이 찍히며 채권단과 협약을 체결하는 등 기업경영 정상화 절차마저 중단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어느 한쪽은 제안을 받았다는 것인데, 정부 당국인 금융위원회는 해명자료를 통해 “자발적 합병을 권유하거나 강제합병을 추진한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소관 부처인 해양수산부도 “처음부터 양대 선사체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며 공식입장을 전했다. 누구의 말이 옳은 것인지, 진실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결국 조급증에 걸린 일부 공직자들이나 기관 관계자가 월권(정보 유출)을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미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제정부 장관은 협의체 구성 배경에 대해 “채권단에 기업 구조조정을 맡겼는데 속도감이 떨어진다는 지적 때문”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최 부총치의 말 속에 어떻게 해서든 올해내 첫 성과를 내야한다는 부담감이 담겨 있다는 설명이다. 한진해운·현대상선 사태는 사실상 정부가 기업의 구조조정에 큰 발을 들여놨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제는 협의체 구성원간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협의체는 금융위원회를 중심으로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금융감독원 등 관계기관을 비롯해 KDB산업은행 등 국책은행도 참여한다.
이들 부처와 기관간 이해관계가 모두 엇갈린다. 어느 한 부처가 총괄할 수 있는 컨트롤 타워가 없어 특정 업종의 구조조정 이슈가 나올 때마다 불만의 소지가 높은 부처나 기관이 외부에 의도적으로 유출하는 일이 많아질 수 있다.
앞서 조선업 구조조정 과정에서도 기업은 배제한채 정부 부처와 기관간 입장을 합의하느라 시간을 낭비했다. 시장에서는 무분별한 루머가 퍼져 기업의 목을 더 죄었다. 같은 상황이 해운업에서 벌어져 향후 정부가 업종 구조조정을 진행할 때마다 비슷한 상황이 반복될 것이라는우려가 커지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정부는 직접적인 개입을 최소한으로 한다고 주장하지만, 현 상황은 이미 산업계에 강력한 경고를 내린 것이나 다름없다”며 “부처간 입맛에 맞춘 구조조정이 진행돌 경우, 당장은 효과를 볼 수 있겠지만 5년, 10년 후 또다른 부실을 야기해 국가 경제에 타격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