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통영) 배상희 기자 = 도로에 줄지어선 선재 수송 트럭과 공영주차장도 모자라 길가에까지 빼곡히 주차된 차량들. 지난 8일 아침 통영시 광도면 공단로 안정국가산업단지내에 위치한 성동조선해양 조선소 야드로 들어서는 길목에서 마주한 첫 모습이다.
194만4000㎡(약 59만평)에 달하는 조선소 부지에 빈곳 없이 쌓여진 선재와 블록들, 조선소 곳곳에서 외형을 갖춰가는 선박들에서 느껴지는 위용이 기자의 첫인상이다. 얼마 전까지 회사의 존폐를 걱정했던 기업이라고 느껴질만한 분위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오전내내 조선소에서 끊임없이 흘러오는 기계음 소리에도 직원들이 보이지 않는 것이 의아해하던 상황에서 정오 12시 점심시간을 알리는 차임벨 소리가 울렸다. 이어 하나둘씩 직원들이 작업장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근무시간에 작업장밖 도처에 몰려있는 직원이 있는지 여부가 조선사의 일감이 많고 적음을 가늠하는 바로미터라는 게 조선업 관계자의 말이다.
불과 5개월전 워크아웃(기업회생절차)의 위기를 견뎌낸후, '필사즉생(必生卽死)'의 자세로 경영정상화에 힘써온 성동조선해양은 빠르게 활기찬 모습을 되찾아가는 분위기다. 오는 15일 4000억원 전후의 채권단 추가 자금지원 결정이라는 중대 사안을 앞둔 성동조선해양은 긴장감과 기대감속에서 재도약의 바다로 나아갈 로드 아웃(load-out)을 준비하고 있다.
한눈에 들어오는 성동조선해양 조선사 전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바로 옆에 위치한 다른 기업 조선사의 텅빈 작업장과 야드가 눈에 띄었다.
성동조선해양 관계자는 "1년전 성동조선해양의 모습이 떠오른다"며 "자금난이 가시화된 지난해말 작업을 진행하지 못해 스산함마저 감돌았던 야드는 이제 넘쳐나는 일감으로 인력마저 충원해야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현재 성동조선해양의 수주 잔량은 64척으로 상반기 기준 세계 9위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현재 2~3년치 일감까지 확보한 상태로 특히 높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탱커 수주 물량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이날도 작업장 곳곳에서는 선박 인도 일정에 맞추기 위해 후판을 들여와 가공하고, 선박 블록을 조립해 배를 만드는 모든 공정이 쉴새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일감이 많다보니 직원이 부족한건 당연지사다. 과거 전성기 시절 9500명의 직원을 보유하던 성동조선해양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가시화된 공장가동률 하락으로 4000여명을 감원했다. 하지만 최근 조선소를 빠르게 정상화시키며 현재 직원수를 8000명까지 회복했다.
성동조선해양 관계자는 "현재 인력이 5%이상 부족한 상태"라며 "향후 300명 이상의 인력충원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 채권단 돈줄죄기에 한숨..."미래를 봐달라"
사무실내 비치된 성동조선해양 사보에는 지난달 제12회 조선해양의 날 산업핵심기술 개발에 참여한 수상자의 영광스런 얼굴과 함께 8년만에 인도 선박 200척을 달성한 성동조선해양의 소식이 담겨 있다.
성동조선해양은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처음부터 육상건조공법을 채택해 201번째의 선박을 완성한 유일무이의 조선사다. 성동조선해양은 10만DWT(재화중량톤수)~20만DWT급 벌커와 탱커 제작분야에서 타업체보다 강점이 있다고 자신한다.
김윤하 성동조선해양 생산본부 상무는 "우리는 이미 준비가 돼 있고, 앞으로 성장할 수 있는 여지도 매우 크다"면서 "선박 제조의 85% 정도가 자체적으로 이뤄지고 유가와 환율 등 외부 변수의 영향을 덜받는 만큼, 근본적으로 시황이 개선되면 살아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조선업 성장에 최적화된 기업은 지금 당장 어려워도, 수만명이 먹고 살고 나라 경제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회생시켜야 한다"면서 "현재가 아닌 미래의 가능성을 봐 달라"고 호소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조선사 근처 우리은행 출장점을 지나치며 "과거 성동조선해양으로 큰 수익을 거뒀음에도 지금은 오히려 좀비기업으로 치부하며 위기에 처한 우리의 상황을 나몰라라하고 있다"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 '동고동락' 주변 상권..."조선사 위기는 우리의 위기"
통영시 연간 수출액의 96%를 담당하는 지역 대표기업으로 통영 경제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성동조선해양의 앞날에 대한 주변 상권 관계자의 관심도 컸다.
성동조선해양 조선소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장 모씨는 "회사 유니폼을 입은 직원이 식당을 찾기만 하면 조선사 상황이 어떤지 항상 물어보곤 한다"면서 "올해 초까지만 해도 너무 힘들었는데 최근 성동조선해양 직원의 발길이 늘며 경기가 나아질 수 있다는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주변 조선업계가 무너지면 주변 상권도 죽을 수밖에 없다"면서 "조선사들이 하루빨리 정상화를 찾아 주변 상권도 활성화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통영시 조선사 직원이 대거 거주하는 죽림 지역에서 7년간 식당을 경영해온 박 모씨는 "한 동안 뜸했던 성동조선해양 단골 손님이 최근 식당을 찾아 너무 반가운 일"이라면서도 "통영시 조선업 전반의 불황 여파로 올해 체감경기는 작년보다 더욱 안좋은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과거에는 30~50대 조선사 직원이 많이 찾았으나 지금은 한달에 한두번으로 줄었고, 회식문화도 사라져 5명 남짓한 사람이 찾는 정도"라면서 "조선사들이 사라지면 주변 상권도 존폐의 위기에 놓이게 된다는 점을 알아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