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정등용 기자 ="최근 공연 예술계에 500억원의 추경(추가경정예산)이 집행됐다. 하지만 이 돈은 ‘공연티켓 1+1 행사’ 등과 같은 곳에 지원됐다. 이런 일회성 지원보다 공연 예술계를 근본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장기적 안목의 지원이 절실하다"
박현준 한강오페라단 단장은 7일 오후 서울 한남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오페라계를 비롯한 공연 예술계의 전반적인 어려움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그는 정부 정책에 대한 아쉬움 뿐 아니라 오페라계 내의 문제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박현준 단장은 “추경예산으로 공연 예술계에 지원된 500억원은 상당히 큰 돈이다. 예술의전당 콘서트를 여는 데 회당 5000만원 정도가 드는데, 산술적으로 따지면 1년 내내 공연을 열 수 있는 정도의 금액이다”라고 지적했다.
박 단장은 이어 “공연티켓 1+1 행사처럼 일회성 사업에 그쳐서는 안 된다. 정확한 정책 비전 없이 돈을 막 풀지 말고 공연 예술의 환경과 기틀이 마련될 수 있도록 장기적 안목을 갖고 지원해야 한다. 지금의 정책은 준비성보다 선심성만 앞세운 방식이다”라고 비판했다.
‘공연티켓 1+1 행사’는 티켓 한 장을 사면 두 명이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행사로 문화체육관광부가 역점을 두고 있는 사업이다. 박 단장의 주장은 이 같은 단기적인 성과가 아닌 장기적인 발전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는 것.
박 단장은 “한국의 성악가들은 세계적인 수준이지만 이를 뒷받침할만한 시설이 부족하다. 국립오페라단과 시립오페라단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고, 민간 오페라단의 수준은 더욱 심각하다”고 꼬집었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최근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는 김학민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으로 넘어갔다.
김학민 감독은 자격 논란 끝에 취임 53일 만에 물러난 한예진 단장의 후임으로 지난 7월3일 부임해 국립오페라단 예술 감독직을 맡고 있다. 그러나 부임 초부터 자질과 전문성 부재 논란에 휩싸이며 곤욕을 치렀다. 지난 1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본인과 관련된 논란에 대한 질문을 회피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박 단장은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은 오페라계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리더십과 포용력이 필요하다. 김학민 감독은 오페라계 내에서조차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라며 현재 상황을 진단했다.
실제로 15일부터 공연하는 ‘진주조개잡이’는 캐스팅 과정에 난항을 겪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더불어 12월에 공연 예정인 ‘라 트라비아타’는 김학민 예술 감독이 추진했던 갈라 콘서트와 일정이 겹치며 출연진은 물론 문체부, 예술의전당과 마찰을 빚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단장은 정부 정책과 기관의 문제와 별도로 오페라계 내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박 단장은 “오페라계 자체적으로도 문제점이 많다. 우후죽순으로 질 낮은 오페라를 양성해서는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기 어렵다. 공연을 사이즈별로 차등을 두어 티켓 가격을 달리 한다든가 아니면 공연 사이즈에 맞는 특징을 특화시켜야 한다”라고 해결책을 제시했다.
오페라 공연을 비롯한 각종 예술 공연의 주요 무대가 되고 있는 예술의전당의 대관 시스템에도 문제가 있다고 박 단장은 지적했다.
박 단장은 “예술의전당도 대관을 할 때 잘할 수 있는 단체를 선별해야 한다. 대관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면서 “보통 대관 경쟁률이 10:1이나 15:1이다. 하지만 누가 심사를 하고 어떤 기준으로 심사를 한 건지 공개되지 않는다”라고 꼬집었다.
박 단장은 이어 “대관 심사도 장르별로 나눠서 해야 한다. 현재는 오케스트라나 성악, 합창 등 서로 다른 장르를 한 데 묶어서 심사하는데, 이는 특정 장르로의 편중을 야기할 수 있다. 20년 전의 방식을 현재까지 고수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이러한 문제 인식에도 박 단장은 오페라의 대중화가 쉽지 않다는 점을 시인했다. 오페라 자체가 상류 계층이 즐길 수 있는 고급문화로 인식되기 때문에 마치 명품가방처럼 상류계층의 전유물이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쉽게 접하기는 어렵다는 것.
박 단장은 “오페라는 영화나 뮤지컬처럼 1000만 관객을 끌어 모을 수는 없다. 몇십만 명만이 향유할 수 있는 고급문화이기 때문에 대중화가 쉽지 않다. 비싼 티켓 가격도 그 값어치를 한다면 어쩔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박 단장은 우리나라 오페라가 한국 관객만을 유치할 것이 아니라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 관광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관광 상품으로 발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 단장은 “유럽은 한 여름에 두 달간 오페라 페스티벌을 진행한다. 독일에는 바이로이트 바그너 오페라 페스티벌이 있고, 이탈리아에는 베로나와 마체라따 등에서 페스티벌이 열린다. 특히 베로나는 인구가 8만명에 불과하지만 연간 200만명의 관람객이 방문해 두 달 동안 4000억원에서 5000억원에 이르는 수입을 올린다”라고 설명했다.
한강오페라단 단장과 별개로 박 단장은 오페라융성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박 단장은 “정부가 오페라융성위원회와 컨소시엄 같은 방식으로 협력하면 오페라 발전에 도움이 될 텐데 그런 부분이 없어 아쉽다. 지금도 위원회 자체적으로 포럼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빛을 보는 날이 올 것이다”라며 말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