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명절 대목엔 물건 분류만 5시간"…24시간 숨가쁜 택배 배송 동행기

2015-09-21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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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한지연 기자. 지난 18일 구리시 토평동에 위치한 CJ대한통운 강동지점물류센터 현장. 100여명의 택배기사들이 자신이 배달할 구역의 물건을 찾아 탑차에 싣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오전 7시에 시작해 보통 4시간이면 끝나지만 이날은 추석배송이 몰려 5시간이 넘어서야 끝이났다.]


(경기)아주경제 한지연 기자 =“704호는 아기가 있어서 벨을 누르면 안 돼요. 물건은 집 앞에 놓고, 문만 살짝 두드려주세요. 1208호는 물을 자주 시켜먹는 집인데 아무도 없어요. 현관 앞에 놓고 나오면 됩니다.”

6년차 배테랑 택배기사 엄태돈(29)씨는 탑차에서 배송할 택배 상자를 부지런히 내리면서 말했다. 추석을 일주일 앞둔 18일 기자는 엄씨와 함께 강동·하남 일대에서 명절 택배 배달에 나섰다. 그는 택배 배송에 관한 몇가지 주의사항을 당부한 뒤 배달할 물건을 들고 뛰기 시작했다. 
 

[사진=한지연 기자. 18일 기자는 6년차 택배기사 엄태돈(29)씨와 서울 강동구, 하남 일대 택배 배달에 나섰다. 엄 씨가 A아파트 단지 앞에서 배송할 물건을 수레에 싣고 있다.]

꺼지지 않는 물류센터의 불…숨 가쁜 24시간

엄씨의 하루는 오전 7시에 시작됐다. 그는 CJ대한통운 강동지점에서 택배 배달일을 한지 6년차다. 서울 강동구 천호동·암사동·고덕동·성내동과 경기도 하남시 일대가 그의 구역이다. 매일 300개의 상자를 1톤 트럭에 싣고 배송하는데 요즘 같은 명절 특수기에는 하루 300~450개까지 물량이 쏟아진다.

엄 씨는 “오전 7시부터 기사들이 자신이 배송할 물건들을 분류하는 ‘까대기’를 하는데 이 작업이 보통 11시에 끝난다”며 “오늘처럼 추석 물량이 몰리면 까대기만 5시간 걸린다”고 말했다.

실제 이날 엄 씨가 배송에 나선 시각은 오후 12시 30분. 평소보다 1시간가량 지연됐는데 오후 4시까지 1차 택배 200여개를 배송하고 다시 물류센터에 복귀해야 한다. 마음이 급하다.

그는 “점심을 먹으면 식곤증 때문에 늘어져서 일부러 안 먹는다”며 “4시 이후에 늦은 점심을 먹거나 저녁으로 대충 때운다”고 말했다.

추석이나 설 같은 특수기에는 대부분의 기사가 하루 2회전 배송을 한다. 물량이 몰리는데 대부분이 추석 선물용 음식이라 명절 전까지 배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엄 씨는 “1차 배송이 끝나면 다시 센터에 복귀해 2차 물량 상·하차 작업을 한다”며 “정해진 시간 내에 배송을 끝내야 하니 마음이 급하다"고 말했다. 그는 “하루종일 뛰어다녀도 모든 일정이 끝나면 오후 10시가 훌쩍 넘어있다”고 했다.

[사진=택배 배송을 하고 있는 기자 모습]


그를 도와 기자도 강동구 일대 택배 배송에 나섰다. 추석 생활용품 선물세트부터 멸치, 배·사과세트, 가구, 절임배추, 생수 등 품목도 다양했다.

무거운 상자를 들고 아파트 계단을 오르내리니 1시간도 안 돼 땀 범벅이 됐다. 개가 짖거나 수산물인데 집주인이 없는 경우에는 참 난감했다.

엄 씨가 일러준대로 택배 송장에 적힌 암사동 A아파트 411호 초인종을 눌렀다. 초인종을 3번 누르고 10분이 지나서야 70대 여성이 문을 연다. 804호에 사는 한 여성은 여자 택배원의 목소리에 사뭇 놀란 듯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인터폰으로 배송장에 적힌 주문자의 이름과 배송업체, 물품을 확인시켜준 뒤에야 문을 열어줬다. 그는 “여성 택배원을 보니 반갑다”고 말했다.

엄씨와 기자가 한 시간 동안 A아파트에서 배송한 물건은 약 50개. 이 가운데 15개가 주인 없이 경비실로 향했다. 이미 경비실 천장과 벽에는 택배가 빼곡했다. 경비원 김 씨(69)는 “명절까지 아주 죽은 목숨”이라며 “하루 100개가 넘는 택배가 쌓이다보니 새벽 1~2시에 택배를 찾으러 오는 사람도 있어 경비원들도 쉴 틈이 없다”고 말했다.

두 번째 도착한 장소는 고덕동 B아파트. 이곳은 아파트와 주택 등 주거단지가 밀집했다. 기자는 주소 찾기가 어렵고 간격이 넓은 주택보다 아파트가 배송하기 수월했다.

아파트가 더 편하다는 기자의 말에 그는 “아파트는 엘리베이터 시간과 출입제한을 두는 경비구역, 위아래만 오르는 반복적인 패턴 때문에 지루하고 힘들다”며 “경력이 많은 택배기사일수록 주택 지역이 편하다”고 했다.

[사진=한지연 기자. CJ대한통운 강동지점물류센터는 명절때만 되면 하루 24시간 돌아간다. 택배기사들이 현장에서 쉴틈없이 움직이고 있다.]


◆명절 특수로 50% 물량 늘어…하루 4만개 택배가 가정으로

올 특수기는 추석 보름 전인 14일부터 시작됐다. 엄 씨가 속한 강동지점도 이미 물량이 50% 이상 늘어났다.

매일 오전 5시 대전·군포·도척·용인 등 전국 6개 지점에서 올라온 4만개의 택배 화물이 컨베이어벨트에 실리면 벨트 양쪽에 1톤 트럭 100대가 대기하다 배송기사들이 물건을 싣는다.

배송 기사는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하다. 경력도 1개월부터 20년까지 제각각이다. 과거에는 아르바이트 개념의 젊은층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60대 이상 노년층도 많다. 부부가 함께 택배일을 하거나 한 가족이 택배를 하는 경우도 많아 여성 택배원도 느는 추세다. 강동지점의 경우 2명의 여성택배원이 있다.

임진수 강동지점 차장은 “올해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소셜커머스의 성장 등으로 물량과 매출이 지난해보다 각각 20~30% 늘어났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택배는 자신이 뛴 만큼 가져가는 정직한 직업”이라며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해주는 만큼 앞으로 더욱 중요한 서비스업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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