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정영일 기자 = 롯데그룹 신격호 총괄회장 일가의 경영권 분쟁은 오래 전부터 예견됐다는 게 재계의 일반적 시각이다.
신격호 총괄회장의 복잡한 가족사 때문이다. 롯데그룹 창업주인 신격호 총괄회장은 슬하에 2남 2녀를 뒀다.
외형적으로 이들 4남매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 신격호 총괄회장과 신동빈 회장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형성됐다.
2004년 해태제과 인수 실패, 2005년 진로 인수 실패, 2006년 까르푸 인수 실패 등 중요 M&A를 벌였던 신동빈 당시 부회장은 잇따라 고배를 마시면서 그룹 내 입지가 줄어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신 총괄회장이 차남인 신동빈 부회장을 고운 시선으로 보기는 만무했다.
때문에 2010년 이후 장녀인 신영자 사장과 셋째 부인 서미경 씨의 딸인 신유미 씨가 잇따라 롯데 계열사 지분을 매입한 것은 신 총괄회장의 안배에 의한 것이라는 소문도 돌았다.
특히 당시 신영자 사장은 부진을 면치 못했던 롯데쇼핑을 '유통 지존'의 자리에 올려놓은 공로를 인정받아 2008년 롯데쇼핑 사장과 롯데면세점 대표이사에 선임돼 이런 주장을 뒷받침해 줬다.
이때부터 '부자 간 불화설'이 나돌았다. 하지만 곧 잠잠해졌다.
이후 한동안 '일본 롯데는 신동주 부회장, 한국 롯데는 신동빈 회장' 체제로 운영됐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롯데그룹 내부에서 다시 이상한 분위기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신동빈 회장의 경영 능력이 인정을 받은 것이다.
실제로 '마이너스 손'이란 별칭까지 얻었던 신동빈 회장은 2009년 들어 두산주류BG와 부산의 쌀과자 업체인 기린을 성공적으로 인수했다. 2010년에는 신 총괄회장의 '마지막 소원'으로 불리는 롯데월드몰과 롯데월드타워의 재착공을 이뤄내면서 아버지의 총애를 한 몸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신동주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지난 2013년부터 한국의 롯데제과 지분을 사들이면서 부친의 노여움을 사는 계기가 됐다.
동생의 괄목할만한 성과에도 일본 내에서 이렇다 할 실적을 못 올리던 신 부회장은 지난해 12월 27일부터 올해 1월 8일까지 일본 롯데의 주요 직책에서 잇따라 해임됐다.
이후 롯데건설·롯데리아 등 한국 롯데 주요 계열사 등기임원에서도 해임되는 등 치욕을 겪었다.
◆ 앞으로 롯데는…신동빈 회장 사실상 경영권도 확보
이번 신동주 전 부회장의 행보가 가능했던 것은 고령인 신격호 총괄회장의 판단력이 약해졌기 때문이라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지난 5월 22일에도 예고 없이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공사 현장을 방문해 휠체어를 탄 채 79층까지 올라가 두 시간 동안 보고 받기도 한 신 총괄회장은 최근 들어 반복 질문 등을 자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롯데 관계자는 "현재 신 총괄회장의 약해진 정신력을 감안하면, 누군가 고집스럽게 어떤 일이 맞는다고 주장하면 제대로 반박하지 못하고 수긍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벌써부터 지분싸움에 대한 추측들이 난무하고 있다.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는 주장은 이미 신동빈 회장이 경영권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신 회장이 일본 롯데홀딩스의 이사진을 이미 장악했고, 팽팽한 지분 구조에서도 롯데홀딩스의 최대 주주인 광윤사 지분을 신동주 부회장에 비해 더 가지고 있다는 추측이다.
더불어 광윤사 지분의 12%를 가진 우리사주도 신 회장을 지지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지난 15일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 선임과 이번 사태의 신속한 정리도 가능했다는 의견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여전히 추측에 불과할 뿐이다. 때문에 제2의 경영권 분쟁은 반드시 발생할 것이라는 게 재계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한편, 롯데그룹 내부에서는 거동이 불편한 신 총괄회장이 일본에 도착하기 전까지 아무도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 했던 것에 대한 책임론이 거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