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정부는 기업을 필요이상 건드리지 마라.”
27일 오후 제주 신라호텔. 한국무역협회(이하 무협)와 한국능률협회 주최로 이날부터 나흘간의 일정으로 진행되는 하계 최고경영자 세미나에서 기조강연을 하던 김인호 무협 회장은 갑자기 원고에 없던 발언을 내놓으며 정부 기업정책의 폐해를 강력히 비판했다.
행정고등고시 4회로 1960년대부터 1990년대 말까지 30여년간 경제기획원·공정거래위원회 등 공직에 몸담으면서 우리나라 시장경제의 발전의 최일선에서 뛰었던 그가 친정인 공무원 후배들에게 불과 4개월여 만에 강공 발언을 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더 나아가 최근 10년여 동안 무역업계를 대표하는 무협 회장 자격으로, 경제5단체장이 던진 발언중 가장 강한 대정부 질타이기도 했다.
이날 김 회장은 정부의 기업사정에 대한 문제점들을 지적했다.
먼저 그는 “기업 또는 기업인이라고 해서 수사나 사법심사 대상에서 제외될 수는 없지만, 확실한 근거에 입각한 최소한의 수사에 그쳐야 한다”며 “근거없는 루머나 투서인이 스스로를 밝히지 않은 음해성 투서 등을 근거로 하는 수사는 지양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법당국이 체계적인 수사를 통해 기업의 폐혜를 지적하기보다 투서나 고발에 의존하는 간접적 수사에 의존하는 한편, 혐의가 드러나기도 전에 정보를 외부로 흘러 여론을 살피는 등 기업과 기업가들을 범죄자로 내몰면서 반기업 정서를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김 회장은 “수사 진행 또한 기업활동을 본질적으로 저해하는 일이 없도록 신중하게 이뤄져야 하며, 수사기관이 본래 수사하고자 했던 사건에 대한 혐의가 해소되면 즉각 수사를 중단해야 한다”며 “다른 사건이라도 찾아서 수사결과를 관철하려는 기존의 수사관행, 속칭 ‘별건수사’는 근본적으로 재검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부 기업에 대한 수사의 경우 사법당국이 본사 압수수색 및 재벌 총수 및 기업인을 소환조사했지만 혐의를 잡지 못하자 본질과 다른 혐의를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다. 그럼에도 아무런 문제를 발견하지 못하니, 여죄가 나올 때까지 끝까지 조사하겠다고 공공연히 밝히기도 했다. 이로 인해 해당 기업은 본래의 기업활동이 상당히 위축돼 회사 붕괴라는 최악의 사태까지 직면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김 회장은 “기업의 각종 활동이나 기업인의 진퇴의 문제를 정권과 연계해서 보는 접근법은 기업과 기업인의 사기를 꺾는 것으로 지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대통령은 우리 기업의 제품 홍보와 해외진출을 돕기 위해 세계 방방곡곡을 누비며 목이 붓도록 경제외교를 펼치고 있고, 막대한 추경예산의 편성으로 경제 활성화를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정부가 경제 활성화의 주역인 기업과 기업인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해외에서 우리 기업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고 정부의 기업정책을 불신하게 하는 일들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며 국정운영의 일관성 결여를 강도높게 비판했다.
마지막으로 김 회장은 “검찰간부, 법무장관을 거친 신임 황교안 총리가 경제와 정무, 사정이 조화를 이루는 수준 높은 행정운영을 통해 대통령의‘경제 살리기’노력을 뒷받침 해 줄 것”을 주문했다.
한편, 김 회장은 강연에서 “한국경제가 추구해야 할 미래비전은 지속가능한 보편성장경제(Sustainable, Inclusive Growth Economy)’이며 이는 구체적으로 ‘기업가형 국가의 실현'을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고 역설했다.
김 회장은 “정부는 시장원리에 충실하게 경제시스템을 재정비하고 경제운영을 해야 하는바 특히 기업에 대한 각종 제도를 재검토하여 제도간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동시에 기업의 활성화가 이루어지도록 유도하여야 하며 특히 기업에 대한 정당한 사회적 인식이 확립되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기업에게 “정부의 이러한 정책방향에 부응하여 글로벌기업가정신으로 재무장하여야 하며 기업의 국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배전의 노력을 다할 것”을 주문하고, 동시에 “기업이 스스로 사회적 책임에 보다 관심을 가져야 기업과 기업인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교정될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김 회장은 “이러한 총체적 노력을 통해 기업이 한국경제의 4대 핵심 과제 즉, 성장, 고용, 분배, 복지의 해결 주체로 등장하지 않는 한 한국경제의 미래는 없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