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주진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이 조만간 정의화 국회의장의 중재로 여야가 합의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해지면서 여야 정치권에 후폭풍이 예고되고 있다.
당장 25일 열릴 국무회의에서 박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지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 1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이번 국회법 개정안은 정부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며 “정부의 시행령까지 국회가 번번히 수정을 요구하게 되면 정부의 정책추진은 악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그리고 우리 경제에 돌아가게 될 것이다. 국정은 결과적으로 마비상태가 되고 정부는 무기력화될 것”이라며 거듭 거부 의사를 밝혔다.
이처럼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이미 기정사실화된 가운데 청와대는 다만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와 극심한 가뭄으로 지지율이 극도로 민심이 악화된 상황에서 정의화 국회의장의 중재로 여야가 합의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박 대통령이 정면으로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민심 이반이 가속화 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메르스가 진정국면에 들어서더라도 메르스 사태로 이어지고 있는 경제적 타격으로 인해 박 대통령이 예전과 같은 지지율을 회복하긴 어려울 것이라는 전문가 전망도 나오고 있기도 하다.
현재 박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은 30%선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국회법 고비가 정리될 때까지는 지지율이 올라가기 기대하긴 어려운 것 같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오는 25일 거부권 행사 여부에 대해 "국무회의 의제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 말을 아끼는 것도 이 같은 분위기를 방증한다.
이에 따라 최종 시한인 오는 30일까지 시간을 갖고 여론의 추이를 살피면서 거부권 행사 여부를 최종 결정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가능성이 커지자 새누리당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현재 새누리당의 대체적인 기류는 당청관계의 파국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재의결 반대(법안 상정 포기)’ 쪽으로 기울고 있다.
당내에서는 김무성 대표 등 당 지도부가 청와대와 만나 메르스 사태 후속 대책과 함께 국회법 문제도 함께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청와대는 "현재로서는 (김 대표와 만나는)일정은 없다"며 선을 긋고 있다.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시 당내에서 불거질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거취 문제를 의식한 것이라는 해석도 제기된다. 김무성 대표는 유 원내대표를 위해 지원사격에 나선 모양새다.
새누리당 전 비상대책위원으로 활동했던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23일 “박 대통령이 당내 비박(비박근혜계)과 강을 건넜다”면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쪽으로 예측되고 있지만 사실 거부권을 행사할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 대통령이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 체제를 불신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교수는 “박 대통령이 실제로 국회법의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유 원내대표의 사퇴도 불가피하다”면서 “이렇게 되면 여당 내에서 친박과 비박 사이에 갈등의 골은 깊어지게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유 원내대표가 재신임을 받을 경우 청와대의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점은 박 대통령으로선 큰 부담이다.
이 때문에 당내에서는 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터져 나오고 있다.
김무성 대표도 이날 기자들과 만나 "(국회로 다시) 안 오길 바란다"며 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길 기대한다고 밝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