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무 LG그룹 회장과 정몽구 당시 현대그룹 회장, 김석준 쌍용그룹 회장, 이웅렬 코오롱그룹 회장, 김현배 삼미그룹 회장 등이 총수 자리에 오르며 각 그룹의 얼굴 마담으로 떠올랐고, 다른 기업들도 2세, 3세 후계자를 대거 요직에 앉히며 1990년대 말까지 후계 구도를 마무리 했다.
재계는 또한 이 시기에 대대적인 사업 구조개편을 단행했다. 1994년 10월 삼성그룹을 시작으로 현대 대우 LG 한화그룹 등이 경영구조개편을 발표했고 이어 선경(현 SK그룹) 쌍용 한진 한화 코오롱그룹 등도 그룹 기획조정실이 중심이 돼 구조개편안을 작성 추진했다.
당시 재계가 발표한 구조개편 방향은 △업종별 소그룹화 △계열사 매각과 합병을 통한 축소 △그룹 총수 및 동일인 지분 축소 △계열사별 독자경영 등을 기준으로 각 그룹에 가장 적합한 안을 고민해 최선의 안을 도출했다.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각 그룹 체질과 사업구조의 효율성을 감안하면서 정부의 정책의지도 수용할 수 있는 묘안을 찾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업구조와 지배구조 개편을 동시에 진행하는 핵심적인 이유는 경영권을 승계 받을 후대 오너 총수에게 그룹 경영의 절대적인 권한을 실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창업주, 2세 총수들에 비해 3세 이후 오너 경영인들은 회사 보유 주식 수가 적어 기존 지분율 만으로 그룹의 영향력을 발휘하기가 힘들다. 또한 선대 회장으로부터 주식을 물려 받으려면 천문학적인 액수의 상속세를 내야하는 부담도 뒤따른다. 따라서 지주사 설립 또는 핵심 계열사에 대한 지분율을 높이면서 핵심 계열사가 주식을 보유한 하부 계열사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향으로 정리해 나가야 한다.
지난달 26일 제일모직과 삼성물산간 합병을 발표한 삼성그룹의 의도는 사실상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지배구조 개편을 위해 반드시 관철시켜야 한다. 이 부회장의 제일모직 지분율은 23.23%로 최대주주다. 제일모직은 삼성전자와 함께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양대 축인 삼성생명 지분을 19.34% 보유하고 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20.76%)에 이은 2대주주다. 삼성물산은 올해 1분기말 기준으로 삼성전자 4.1%, 삼성테크윈 4.3%, 삼성엔지니어링 7.8%, 제일기획 12.6%, 삼성정밀화학 5.6%, 삼성SDS 17.1%를 보유하고 있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흡수합병하면 합병회사는 삼성전자의 2대주주로 올라서기 때문에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확대할 수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의 경우 정몽구 회장의 지배력이 여전히 건재하고, 현역에서 계속 뛸 것임을 분명히 해 경영권 승계를 위한 구체적인 모습은 드러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정 회장도 언제까지 전면에서 모든 것을 책임질 수 없기 때문에 조만간 아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을 후계자로 공식 선언한 다음 지분율 정리 등 후속 절차에 들어가도록 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시기와 방법론에 있어 예측 가능한 전망은 현재 등기임원으로 올라 있는 현대제철 대표이사 직에 정 부회장이 언제 오를 것이냐는 것이다.
현대제철은 과거 현대그룹이 제철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인수한 인천제철이 전신으로, 그룹 창업주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은 지난 1981년 장남 몽필씨가 3년 만에 경영에 복귀하며 회사의 전신 인천제철을 맡겼고, 이어 1986년에는 정몽구 회장이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했다. 즉, 현대제철 대표이사가 된다는 것은 그룹의 적통을 물려받는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7월 1일 현대제철은 현대하이스코를 흡수합병해 통합 현대제철로 새롭게 출범한다. 17일로 마감된 주주들의 주식매수청구권도 원만하게 마무리 돼 이번 주 내로 인사가 단행될 것으로 알려졌다. 통합 현대제철의 출범은 창업주로부터 정몽구 회장으로까지 이어져온 일관제철사업을 완성했다는 점에서 현대차그룹으로서는 기념할 만한 일이다.
따라서 집안의 전통에 정몽구 회장이 그룹 전반을 책임지는 동안 정의선 부회장에게는 현대제철 대표이사로서 본격적인 최고경영자 수업을 받게한 뒤 향후 중장기 미래에 경영대권을 물려줄 것으로 예상된다.
다른 여타 대기업들은 재계 1, 2위인 삼성그룹과 현대자동차 등 후계 작업 향배에 주목하며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지배구조 개편이 완료돼 후계자 오너 총수체제가 마련되는 데로 2차 이후 단계의 구조개편도 본격화 될 전망이다. 사업구조개편은 그룹 총수가 결심해야 할 부문이 많다는 점에서, 전문경영인이 추진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